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해외의존도가 높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의 약점을 부각했다. <디지털데일리>는 소부장 육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 유망기업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전쟁과 팬데믹 등 대내외적인 이슈에도 전기차 산업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장비 조달 차질 등으로 일부 투자 계획이 변경되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일정에는 큰 차질이 없는 상황이다. 2020년 전후 착공한 배터리 공장이 가동에 돌입하면서 소모품인 소재 분야는 수요가 급증했다. 배터리 원가 40~50%를 차지하는 양극재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양극재 시장 규모는 2021년 173억달러(약 22조6630억원)에서 2030년 783억달러(약 102조57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오는 2025년부터는 양극재 공급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극재에 따라 배터리 에너지밀도와 종류가 좌우된다. ▲리튬·코발트·옥사이드(LCO) ▲리튬·망간·옥사이드(LMO) ▲리튬·인산철(LFP)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 조합별로 다르고 각 광물 비중에 따라 전기차 주행거리 차이가 있다.
국내 양극재 기업은 배터리 3사와 동반 성장하는 추세다. 세계 1위를 다투는 LG에너지솔루션의 핵심 파트너인 엘앤에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 7월 설립된 엘앤에프는 LG그룹과 연이 깊다. 최대주주 새로닉스(지분 14.44%)가 GS의 방계기업이기 때문이다. 새로닉스는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 차남 허학구 회장이 1968년 세운 회사(구 정화금속)로 허 회장 외아들 허전수 회장이 2000년에 물렸다. 당시 허전수 회장은 액정표시장치(LCD) 백라이트유닛(BLU) 사업을 하기 위해 엘앤에프를 만들었다.
현재는 허전수 회장 장남 허제홍 대표가 새로닉스를 이끌고 엘앤에프는 전문경영인 최수안 대표 체제로 운영 중이다. 새로닉스의 경우 허제홍 대표와 동생 허제현 부사장이 각각 지분 21.04%와 14.06%를 보유 중이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엘앤에프 지분 2.00%와 1.58% 갖고 있다.
최 대표는 지난해 3월부터 단독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과거 LG화학에서 근무하다 엘앤에프로 넘어왔고 대표 자리까지 올라온 배터리 전문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엘앤에프는 LCD에서 발광원 역할을 하는 BLU 사업을 영위하다가 2005년 자회사 엘앤에프신소재를 설립한 뒤 양극재 사업을 시작했다. LCD 시장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2013년 BLU 제조를 중단했고 2016년 엘앤에프신소재를 흡수합병해 양극재 부문 확장에 나섰다.
엘앤에프는 LG에너지솔루션과 10년 이상 양극재 분야에서 협업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왔다. 지난 19일 대구 본사에서 만난 엘앤에프 관계자는 “업력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하이니켈 시장 진입이 경쟁사 대비 빨랐다”고 설명했다. 하이니켈은 니켈 함량이 높은 것을 뜻한다. 통상 70~80% 이상을 나타낸다.
지난해부터는 기존 NCM 제품에 알루미늄(A)을 더한 NCMA 양극재 공급을 본격화했다. 해당 소재는 니켈 함량 90%에 달한다. GM 전기트럭 ‘허머EV’ 등 배터리에 쓰이고 있다. 엘앤에프는 향후 니켈 함량을 96%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사도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4월 SK온과 1조2176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북미 고객사와 양극재 판매를 위한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테슬라로 추정된다. 테슬라는 기가팩토리에 자체 배터리 생산라인도 구축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NCMA 양극재 비중이 대폭 늘었다. 최근 제작하는 양극재는 주로 원통형 배터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차세대 제품으로는 단결정 양극재를 준비 중이다. 기존 양극재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뭉쳐진 다결정 형태다. 배터리 전극 공정에서 압연이라는 단계가 있다. 압연은 양극활물질이 코팅된 알루미늄판을 회전하는 롤 사이로 통과시켜 일정한 두께의 판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때 결정체가 부서지면서 그 사이로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밀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스 발생이 늘고 충방전 주기에도 영향을 준다. 단결정 양극재는 관련 이슈가 없다.
엘앤에프는 단결정 양극재 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배터리 제조사에서 테스트하는 단계로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NCMA에서 A 대신 다른 원료를 조합하는 양극재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능력(캐파)도 지속 확대하고 있다. 기존 대구 및 왜관 공장에서 2만톤, 구지 1공장 4만톤 수준이었다. 올해 상반기부터 구지 2공장(7만톤)이 시가동에 들어갔고 하반기부터 매출이 발생한다. 연내 13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구지 3공장 설립 계획도 세웠다. 이곳은 7만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회사 관계자는 “3공장은 2공장 인근에 마련될 것”이라며 “2024년부터 가동될 예정으로 이때부터는 20만톤 내외 캐파를 확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향후 미국에 양극재 공장을 구축할 방침이다.
엘앤에프는 지난 2011년 설립한 자회사 제이에이치화학공업을 통해 전구체를 일부 조달한다. 전구체는 양극재 중간재료다. 제이에이치화학공업 비중은 20% 미만이다. 작년에는 테슬라 공동창업자가 만든 레드우드머티리얼즈와 협업하기로 했다. 레드우드는 폐배터리 리사이클 회사다. 원료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방산업 호황으로 회사 전망은 긍정적이지만 리스크가 하나 있다. 모회사 지원이 없어 투자금 확보가 제한적인 부분이다. 재작년과 작년 유상증자를 실시한 배경이다. 신공장이 본격 가동하는 2024년 이후는 자체 수익을 통해 투자가 가능하지만 남은 2~3년이 관건이다.
한편 엘앤에프의 지난 3년 매출액은 ▲2019년 3133억원 ▲2020년 3561억원 ▲2021년 9708억원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19년 77억원(손실) ▲2020년 15억원 ▲2021년 443억원이다.
양극재는 원재료 비용이 90% 내외를 차지한다. 판가 인상이 비교적 빠르게 반영되는 편이지만 태생적으로 영업이익률이 낮은 산업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후발주자 진입이 쉽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