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지난 20일,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심 4차 변론이 열린 날이었고, 자연스럽게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이 장관은 “법률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많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를 보면, 이 장관은 이 사안을 단순히 두 사업자의 법적 분쟁으로만 인식하는 듯 하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소송을 제기하며 촉발된 망 이용대가 분쟁은 그러나 본질적으로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 대비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무임승차라는 함의를 가진다. 이 장관의 발언이 아쉬운 이유다.
같은 날 항소심 4차 변론에서 넷플릭스 측 변호인은 SK브로드밴드에 “피고(SK브로드밴드)는 언제든지 피어링을 중단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이익을 다 누리고 돈도 받겠다는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피어링(Peering)을 중단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에 망 접속을 끊어버린다는 의미다.
넷플릭스의 이 같은 주장은 상당히 교묘하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굳이 ‘피어링 중단’을 언급한 것이다. 여기엔 정말 피어링이 중단된다 해도 넷플릭스는 큰 손해를 입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현재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직접접속(피어링)해 전용망을 제공받고 있는데, 전용망이 사라지면 대신 중계접속(트랜짓)으로 서비스를 하면 된다. 다만 중계접속을 하면 그 특성상 콘텐츠 전송속도가 느려지고 품질이 나빠질 수 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SK브로드밴드 이용자고, 욕을 먹는 것은 SK브로드밴드뿐이다.
이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즉 글로벌 CP와 국내 ISP간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플릭스는 이미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대가 협상 요구에 수 차례 불응했고,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 절차도 패싱한 채 끝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로선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종호 장관은 간담회에서 “교수 신분이었다면 얘기할 게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주무부처 장관이기에, 이 같은 불균형한 관계를 이해하고 살펴봐야 한다. 망 이용대가 논쟁을 단순히 기업간 갈등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글로벌 CP에 대한 국내 ISP의 협상력 열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 점에선 국회가 정부보다 앞서 있다. 현재 우리 국회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가 ISP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반드시 ISP와 망 이용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한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이종호 장관과 과기정통부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CP의 망 무임승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