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온라인성지는 어떻게 탄생했나]② 장려금 차별 부추긴 통신사

권하영
흔히 ‘단통법’으로 알려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후 통신사들의 마케팅 출혈 경쟁은 확연히 줄었다. 문제는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법의 사각지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성지에선 판매자에게 주어져야 할 판매장려금을 고객에게 불법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비밀스럽게 홍보하며, 현장에선 말 없이 계산기로 가격을 흥정한다. 정부는 매번 성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잠잠해지는 것은 잠시뿐이다. 디지털데일리는 현 시점에서 온라인 성지가 탄생한 배경과 그 단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불법지원금으로 휴대폰을 판매하는 이른바 ‘성지’는 사실 통신사들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애당초 성지가 탄생한 것은 휴대폰 지원금을 제한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탓이 컸지만, 이후 성지가 음지에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사업자의 방관 아닌 방관이 주효했다.

◆ 장려금 차별에 기인한 온라인 성지

단통법과 성지가 등장하기 직전, 통신사들의 지원금 경쟁은 절정을 달렸다. 한달 동안 통신사간 번호이동 건수가 100만건을 웃돌던 때다. 마케팅비만 수조원이 투입됐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과징금을 부과해도 그때 뿐, 통신사들도 “한쪽이 지원금을 뿌리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그런데, 온라인 성지는 통신사 입장에서 마케팅 출혈경쟁을 줄일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전국 유통망에 장려금을 뿌리지 않고도, 일부 성지에 장려금을 몰아줌으로써 마케팅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경쟁사에 대한 번호이동 방어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적인 장려금 정책으로 전체 마케팅비 규모도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

휴대폰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하루에 번호이동 건수가 2만건씩 일어나다 보니 여기에 마케팅비를 총투입해야 했는데, 지금은 성지 몇 곳에 장려금을 몰아주면 빼앗긴 번호이동 건수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며 “과거에는 마케팅비로 10억원을 썼다고 하면, 지금은 3000만원만 써도 가능한 일”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통신사들은 일부 성지에만 많은 장려금을 지급하는 ‘타깃(Target)’ 정책을 실시했고, 유통업계는 이러한 장려금 차별 정책을 중단할 것을 수차례 요구해야 했다. 휴대폰 판매점주들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지난 2019년 “통신3사의 판매점간 차별 정책으로 유통시장이 기생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통신사들이 장려금 규제 정책을 반대한 것도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정부 주도로 구성된 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장려금 연동제’ ‘장려금 차등제’ 등 장려금 규제 정책을 논의했으나, 통신3사가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다. SK텔레콤만이 장려금 차등제에 한해 일부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성지는 장려금 차별에 기인하는 것인 즉, 장려금 차별이 없으면 성지도 있을 수 없다”면서 “그런데 통신사들이 장려금 차별 금지에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그걸로 자신들이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작 이용자 혜택이 증대되는 방향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 장려금 투명화로 성지 개선될까

다만 근래에는 통신사들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장려금 투명화 시스템’이 대표적 사례다. 장려금 투명화 시스템은 불투명하게 관리돼 온 판매장려금을 전산화한 것으로, 특정 채널에 장려금이 쏠리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최근 통신사들은 대리점에만 적용되던 이 시스템을 일선 판매점 단위까지 확대 구축하기로 방통위와 협의했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교수는 “아직까지는 통신사들이 장려금을 어떤 식으로 분배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정부가 ‘장려금을 이렇게 지급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자발적으로 장려금 지급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신 기업간 경쟁은 장려금이 아닌 소비자들에게 가는 지원금에서 일어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윤웅현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팀장은 “장려금이 음지화돼 전달될 경우 그로 인해 장려금 차별이 곧 이용자 차별로 전이되는 문제가 그동안 있어왔다”면서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해 사후적으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장려금 투명화 시스템이고, 이것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통신사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방통위는 방통위대로 사실조사에 착수했다. 온라인 기반 성지점을 겨냥해 공시지원금을 초과하는 불법지원금, 부가서비스 사용 강제, 단말기 할인금 허위과장표기, 사전승낙서 미게시 등 단통법 위반행위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사실조사 자체는 성지점에 맞춰졌지만, 불법지원금 재원이 되는 통신사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