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8년]<하>위기의 단통법, GO냐 STOP이냐 ‘기로’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시행 8주년을 맞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올해도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 이름처럼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시행됐지만, 지난 8년 동안 정작 소비자 차별을 야기한 유통구조의 개선세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통신사 간 경쟁 제한 등의 부작용까지 낳으며 여론은 단통법을 폐지하자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다만 일각에선 단통법이 도입됐던 배경을 고려해 폐지가 능사는 아니며, 개선해 나가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방통위 “추가지원금 한도상향으로 음성채널 양지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해 6월 계속되는 실효성 논란 속에 단통법을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지원금 한도를 기존 공시지원금의 15%에서 30%로 상향한다는 내용이 개정안의 골자다. 추가지원금은 통신사가 지급하는 공시지원금 외 유통채널이 따로 소비자에 지급하는 지원금을 의미한다. 현행법상 추가지원금의 액수가 공시지원금의 15%를 넘으면 불법보조금으로 분류된다.
방통위가 추가지원금 한도를 상향한 배경은 이렇다. 유통구조 투명화를 목표하고 있는 만큼 추가지원금 한도 제한을 점차 늘려간다면 추가지원금과 불법보조금의 간극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 것이다. 나아가 ‘성지’로 일컬어지는 음지채널의 양지화를 통해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윤웅현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팀장은 “추가지원금 한도 상향을 통해 합법의 영역을 넓혀 합리적인 경쟁을 허용하고, 그 뒤 불법에 해당하는 부분들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규제 방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추가지원금 한도 상향, 유통채널 “유통구조 문제 해결하지 못해”
다만 단통법 개정안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특히 유통채널은 개정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추가지원금 한도 상향으로는 현재 유통시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추가지원금 15%도 버거운 상황에서 30%를 채우는 것은 무리라고 항의했다.
유태현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회장은 최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는) 추가지원금 한도를 현행 15%에서 30%로 상향하면 음성보조금의 최소 15%가 양성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며 “하지만 시장에선 추가지원금 한도를 상향해도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통채널 측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유통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단말기를 살 때 받는 지원금은 크게 공시지원금과 추가지원금으로 구분되는데 공시지원금은 통신사가, 추가지원금은 유통채널이 지급한다. 이 때 유통채널은 통신사로부터 받은 장려금으로 추가지원금을 마련한다.
문제는 통신사가 유통채널별 장려금을 차별 지급하는데서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장려금을 적게 받는 유통채널의 경우 추가지원금을 마련하기 어렵고,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유통채널 측의 입장이다. 추가지원금 한도가 상향될 경우 장려금을 많이 받는 채널과, 적게 받는 채널 간 격차는 더욱 심화된다.
국회도 이런 부분을 우려해 단통법 개정안 심사를 보류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1일 법안소위를 열고 단통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추가지원금 한도 상향이 오히려 차별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보류시켰다.
다만 방통위는 유통채널이 공시지원금의 30%를 추가지원금으로 지급할 여력이 된다는 입장이다. 윤웅현 방통위 단말기유통조사팀장은 “현 불법보조금 시장의 규모를 조사해 봤을 때 30%면 유통채널에서 충분히 마련 가능한 추가지원금 규모라고 봤다”고 말했다.
◆단통법 보완에 '무게'…장려금 투명성 확보가 관건
논란 속에 단통법을 폐지하고 그냥 시장경쟁에 맡기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2020년 11월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단통법 시행 6년을 맞아 폐지안을 발의한 바 있다.
통신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지원금 한도를 둔 건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 특정 단말기에 대해 지원금이 낮을수도, 높을 수도 있는 건데 ‘항상 이 정도를 줘야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않다”며 “길게 봤을 때, 제일 좋은 상태는 소비자들이 투명하게 가격을 볼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맘껏 경쟁할 수 있는 시장 상황을 만드는 건데 방통위가 규제하는 상태에선 그런 시장이 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과 업계는 단통법 보완에 좀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난 8년 동안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열됐던 번호이동시장은 8년 전과 비교해 안정화됐으며 선택약정 할인이 도입되면서 소비자가 신규가입과 번호이동 차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대신 단편적인 규제를 계속 늘려가는 방식이 아닌, 단통법의 당초 취지에 맞는 해결책을 구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유태현 회장은 “도로에 무법자들이 즐비하고 단속이 안된다고 ‘불편하니까 도로교통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 같다”라며 “단통법의 취지가 이용자들 차별을 없애고 유통망의 일탈을 막기 위한 법안인 만큼 단속이 잘 안되는 이유를 찾아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지원금 한도를 자꾸 늘려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단통법이 가진 취지와 맞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현재 단통법을 보면 그 취지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개정 과정에서 목표를 확실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통신이 규제산업임을 감안해 법을 개정해야할 것 같다”며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단 이미 있는 틀내에서 사업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방향을 넓혀주고, 대신 잘못된 행위를 방통위가 잘 평가하고 이를 제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현재 단말기 유통시장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통신사의 판매장려금 지급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에 KMDA는 통신사의 채널 간 장려금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통신사가 추가지원금 이상의 장려금을 유통채널에 지급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방통위에 요청했다. 다만, 해당 법안이 마련되기 위해선 장려금 파악이 선행돼야 하는 가운데 음지채널에 오고가는 장려금을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방통위는 현재 단통법을 보완할 수단으로 ‘장려금 투명화 시스템’을 두고 있다. 통신사와 대리점 사이에만 구축된 이 시스템을 연내 판매점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음성보조금을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인 가운데 향후 해당 시스템이 단통법을 보완할 수단으로 자리잡을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윤웅현 단말기유통조사팀장은 “시스템을 통해 장려금 차별이 발생하는 곳을 파악해 규제한다면 유통채널 간 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스템을 갖췄다고 처음부터 모든 장려금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진 않지만 투명성을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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