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쿠팡과 CJ제일제당, 누가 ‘갑’일까?

이안나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요즘 쿠팡은 억울하다. 시민단체에 이어 이번엔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과 갈등 중심에 섰다. 시작은 쿠팡이 지난달 초 햇반·비비고 등 CJ 주요 상품 발주를 중단하면서부터다. 발주 중단 이유에 대해선 쿠팡과 CJ 입장이 극명히 갈린다. 양사는 서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했다고 주장한다.

누가 진짜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갑질을 한 것일까. 쿠팡과 CJ제일제당을 유통사와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과 ‘콘텐츠’ 관계로 들여다보면 힌트가 보인다. 쿠팡이 대형 이커머스 업체일지라도 식품업체 1위 CJ에 갑질을 할 만큼 플랫폼 장악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CJ 햇반·비비고 등은 각 식품 시장에서 점유율 45~70%를 차지하지만, 쿠팡을 대체할 채널은 무수히 많다.

물론 반대의 시각도 가능하다. 쿠팡의 새벽배송 시스템은 경쟁 플랫폼에 비해 앞서 있다. 충성 고객 역시 업계 선두권이다. 비비고만두 대신 OO만두를 선택한다면? 쿠팡은 CJ 입장에서 함부로 할 수 있는 플랫폼은 아니다.

과거부터 플랫폼이 성장할 땐 항상 그 플랫폼을 채우는 ‘콘텐츠’ 업체들과 갈등이 있었다. 2014년경 11번가·G마켓 등 오픈마켓들이 네이버에 상품 데이터베이스(DB) 제공을 철수했다가 재입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제휴 수수료 정책에 반발은 했지만 검색 1위 네이버는 오픈마켓에 대안 없는 필수 플랫폼이었다. IPTV 채널을 구성하는 홈쇼핑 업체들이 매년 급증하는 송출수수료를 어렵게 내고 있는 이유도 이를 통한 매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콘텐츠 힘에 밀려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플랫폼도 있다. 2000년대 초반 ‘파란’은 포털 후발주자로서 지배력을 갖기 위해 당시 수요층이 많은 4대 스포츠지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신생 스포츠·연예 매체들이 생겨나고 네이버·다음에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결과적으로 파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플랫폼 영향력이 막강할 경우 콘텐츠는 속절없이 그 정책에 따라가게 된다. 반면 콘텐츠 힘이 막대할 경우 장악력이 높지 않은 플랫폼은 여러 채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쿠팡과 CJ제일제당간 갈등을 다시 보자. 지난주 쿠팡의 CJ제일제당 상품 발주 중단 소식이 전해진 후, 11번가·위메프·SSG닷컴·G마켓 등 경쟁 이커머스 업체들은 일제히 CJ 상품 할인판매를 시작했다. 인기 상품으로 고객이 찾아오도록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만약 쿠팡 외 마땅한 플랫폼이 없었다면 CJ제일제당은 쿠팡이 제시하는 높은 마진율을 차마 거부하기 어려웠을 터다.

그렇다면 CJ제일제당이 갑인걸까? 약속된 물량을 납품하지 않은 CJ제일제당이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누가 우위에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쿠팡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아마존은 최저가 제공을 위해 일부 카테고리 자체상품(PB)를 만들고, 주력 회사들은 아마존 상품 노출을 위해 광고를 한다. 아마존 입장에선 1석2조인 셈이다. 쿠팡도 플랫폼 힘을 키우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 향후 CJ와 힘의 논리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 강대강 싸움에서 정작 소비자 입장을 생각한 기업은 없다는 게 아쉽다. CJ제일제당은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10% 증가했고, 쿠팡은 지난 3분기 사상 첫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먹고살만한 대기업들이 소비자는 뒷전인 채 자사이익만 내세운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물가 상승으로 장바구니를 채울 때마다 고민이 깊어지는 게 현재 다수 국민이 겪는 어려움이다. 가뜩이나 먹거리 상품을 두고 벌어진 갈등에 소비자는 가격 인상과 배송의 불편만 떠안게 됐다.
이안나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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