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반도체학과, 빛 좋은 개살구 안되려면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연간 3000명, 10년간 3만명.
앞서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발표한 국내 반도체 기업 인력의 부족 규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소재·부품·장비 기업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은 연간 3000여명의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이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10년간 누적 부족 인력 규모는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묵은 문제다. 정부의 반도체 인력 육성 지원책이나 투자가 꾸준히 지속돼야하는 이유다. 고급 인력이 기업 경쟁력의 밑거름이라는 것은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등장한 해법 중 하나가 반도체 계약학과의 대폭적인 증설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도권 중심으로 증설이 이뤄지자 비 수도권 지방대 총장들이 반대해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계약학과란 기업과 대학교가 연계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취업을 보장하는 학과로, 지난 2006년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기존에는 서울대를 제외한 ‘SKY’와 성균관대 3곳에서 채용 조건형 반도체학과를 운영했다. 올해는 KAIST와 포스텍, 서강대와 한양대도 반도체 계약학과가 신설돼 7곳으로 늘었다.
2023년 반도체 관련학과 모집 규모는 1382명, 계약학과 정원은 360명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열기는 뜨뜻미지근하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년 고려대·연세대·한양대 반도체학과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10명 중 7명인 꼴이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우 지난해 13~16대 1에 달하던 경쟁률이 8~10대 1로 하락하기도 했다.
계약학과를 제외한 수도권 전문대학 및 비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학과는 충원이 미달되는 경우도 다수다. 일례로 세종시 소재의 한 대학교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부는 지난 4년 동안 한 차례도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학과 정원을 5700명까지 증원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렇지만 1000여명 남짓한 정원도 미달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숫자 늘리기는 의미가 없다.
입시 전문가들은 합격자들이 의대, 치대, 한의대 등 다른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등록을 포기했다고 분석했다. 소위 ‘의치한’이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의치한’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쿨’하게 인정해야한다. 이과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인지하되 반도체학과의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야한다는 뻔한(?) 결론이 나온다.
이 뻔한 결론을 위한 방법론에서 해법을 하나 둘씩 메우고, 찾아가면 된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들면 학과 증설을 반도체에 한정하지 않고 화학공학과 물리학, 기계공학 등 반도체와 관련된 교과를 교차해서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커리큘럼을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보다 우수하고 인력풀을 크게 넓힐 수가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정부와 기업의 지원도 보다 적극적이어야한다. 교수 인력 부족, 노후화된 장비 역시 문제다. ‘이만큼 인원을 늘렸으니 등록해라’가 아니라 ‘이런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라고 선보여야 인재가 몰리는 학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래야 빛좋은 개살구 소리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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