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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②] 힘의 논리로 새판 짜여지는 IT전쟁… 더 커진 ‘글로벌 경영’ 리스크

박기록
‘생존’이 화두다. 2023년이 밝았지만 IT산업계를 둘러싼 거시경제지표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경기쇠퇴’(Recession)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IT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정부의 과감한 제도적 혁신도 요구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전환’이라는 담론과 함께 디지털데일리는 2023년 신년기획으로 ‘IT산업, 생존의 경제학’을 주제로 IT산업계의 생존 해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본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기자] “니 전국체전 나가나?”

그룹을 이어받을 맏아들이 일본의 경쟁사에 비해 적지않은 매출 격차가 벌어졌음에도 ‘백색가전은 그래도 내수 1등’임을 자랑하듯 대답하자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이 한심한 듯 혀를 차면서 이렇게 면박을 준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TV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인상깊은 장면중 하나다. 이 장면의 시대적 배경이 1990년대를 전후한 시점으로, 30년전의 상황 설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수출’에 대한 강박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오히려 더욱 절실해졌다. 어느새 세계 무역규모 6~7위로 성장한 대한민국에서 ‘수출’은 우리 경제에 있어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달러 가격, 에너지 가격의 급등락, 글로벌 공급망 문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문제 등 다양한 대내외 변수들에 더욱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뿐만 아니라 E.S.G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칩4 동맹’ 전략에서 보듯, EU와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보호무역주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는 경제논리가 아닌 중국을 견제하기위한 정치 논리, 힘의 논리가 개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집중해왔던 수출 드라이브 전략에도 기존과는 다른 대응 방식이 필요해졌으며, 이는 또 다른 리스크임을 의미한다.

단순히 ‘교역조건’ 등 경제적 관점만이 아니라 국제 정세의 흐름까지 절묘하게 조절해야하는 고차원적인 외교의 문제로 까지 확장됐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무역이 이제 더 이상 경제의 영역이 아닌 정치와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미지>삼성증권
<이미지>삼성증권
◆가장 어두운 새벽… 우울한 올해 수출 전망

올해 우리 나라는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반도체다. 무역협회등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전방 산업의 약화로 반도체산업은 전년대비 약 15% 정도의 수출 하락이 예상됐다.

더구나 반도체는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 불똥이 언제든지 국내 업체들에게까지 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적지않은 부담이다.

다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2차전지는 작년과 비교해 올해 수출이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등 IT업종내에서도 희비는 엇갈린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올 한해 우리 수출은 4%~4.5%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일 전국 2254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3 경제·경영전망’에 딸면, 올해 ‘한파가 몰아칠 업종’은 비금속광물, 섬유, 정유·화학, IT·가전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년과 비교해 올해 수출 전망을 묻는 질문에서 수출 전망의 경우 43.2% 기업이 ‘동일 수준’을 전망한 가운데 마이너스 구간을 꼽은 기업이 26.2%로 나타났다.

◆강대국 힘의 논리 '변수'IT업계, 새롭게 짜야하는 ‘글로벌 경영’ 전략

삼성증권은 작년 7월 매우 흥미로운 프리미엄 리포트를 내놓은 바 있다. 현재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에서 비롯됐으며, 이제 군사적 수단이 아닌 경제적 수단으로 세계 패권을 결정짓는 이른바 ‘지경학’(Geo –economics)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리포트의 핵심 내용이다.

앞서 미국은 1970년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시절,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기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는데, 1차적인 목표가 같은 공산진영인 ‘소련과 중국의 분리’였다.

리포트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은 핑퐁 외교를 통해 닉슨 대통령은 1972년 마오쩌뚱 주석을 만나 ‘중국 포용정책’을 시작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중국을 시장경제화를 강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중국의 자유화’와 자본주의 체제로의 편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국의 중국 포용정책은 실패했으며 오히려 중국이 이 정책을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첨단기술을 무단으로 획득하고, 결국 스스로 패권국이 되려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란 분석이다.
결국 앞으로 미국은 지난 수십년간 상호의존적이었든 중국과의 관계를 청산할 계획이며, 반도체와 같은 기술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지속할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로 작년 8월,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포함해, 중국에 고성능 AI반도체 선적 금지와 반도체 장비의 수출도 금지시키는 초강수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단순한 일회성 헤프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프레임의 변화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작년 하반기,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칩4’ 동맹이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 추격세를 꺽기위해 구체화한 것이 미국 주도의 ‘칩4 동맹’이다.

‘칩4’ 동맹은 미국, 한국, 대만, 일본 4개국 주도의 인위적인 반도체 시장 질서와 주도권의 재편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선 섣불리 ‘칩4’를 물을 수 없다. ‘칩4’의 논의 방향에 따라, 현재 우리 반도체업계의 핵심 시장인 중국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칩4 중에서 우리가 가장 큰 댓가를 각오해야한다.
물론 칩4 국가들 내부에서도 그들만의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대만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2026년 가동을 목표로 3나노 기반의 반도체 제조시설(팹)을 추가로 지을 계획이며, 이를 위해 당초 120억 달러보다 무려 3배나 늘어난 4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대조를 보였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TSMC 피닉스 공장 가동식의 참석해 “제조업이 돌아왔다”며 축사를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전략이 경제 논리에만 집중할 수 없음을 상징했다.

또한 이 행사에 참석한 애플의 팀 쿡 CEO도 ‘앞으로 미국산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동안 애플을 내내 불안하게했던 ‘차이나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게됐다는 의미다.

즉, 이제는 ‘수출 경쟁력’의 의미가 안정적인 부품의 조달과 유통도 함께 보장되는 안전한 ‘공급망 문제’도 포함되게 됐음을 의미한다. 아쉽지만 우리로서는 쉽게 대응할 수 없는 급격한 글로벌 시장 상황의 변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초기시장’에도 과감한 베팅…‘생존’전략의 진화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제일 싫어한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면 어떠한 전략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투자 대상이 홈그라운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고, 거기에 아직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초기 사업 모델이라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함부로 베팅에 나설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실이 익을때까지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IT기업들의 글로벌 전략도 보다 세밀하게 진화되고 있다.

아울러 단순한 비즈니스의 확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당장의 손익계산서 보다는 4~5년후를 내다보는 담대하고 도전적인 베팅도 나타나고 있다.

과연 그 결과가 헤피엔딩 일지는 모르지만 현재 국내 IT기업들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네이버가 지난 5일 북미 최대 패션 개인간거래(C2C) 플랫폼기업인 포시마크 인수 절차를 최종 완료한 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네이버가 인수한 북미 C2C전문기업 포시마크
네이버가 인수한 북미 C2C전문기업 포시마크

이제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된 포시마크는 기업가치가 무려 12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기업이다. 네이버는 포시마크를 인수하는데 13억1000만달러(약 1조6700억원)를 지불했다.

비록 사업성격은 다르지만 아마존과 같은 거대 e커머스 기업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의 이번 베팅은 관심일 수 밖에 없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장기적 관점으로 글로벌 C2C 포트폴리오 구축을 시작했고, 포시마크 인수로 북미시장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경쟁에 진출함으로써 C2C가 주요 매출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네이버는 700조원 규모 사우디아라비아 초대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네옴시티’ 사업 수주전에 참여하겠다고 공식화하고 있다.

이젠 우리 IT기업들의 몸집도 글로벌 IT시장에서 선제적인 모험 투자를 감행할 만큼 몰라보게 커졌다.

보다 더 큰 과실을 얻기위해서는 오히려 지금의 불확실성을 역이용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2023년, 담대한 '기업가 정신'의 발현이 다시 한번 요구되고 있다.
박기록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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