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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만 4개월째…” 전기택시 굶기는 인천국제공항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기자
인천국제공항 동편 장기주차장 인근에 마련된 택시전용 주차장 충전소. 현재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인천국제공항 동편 장기주차장 인근에 마련된 택시전용 주차장 충전소. 현재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공항에서 올해 2월에 설치한 충전기인데 6월인 지금도 쓸 수가 없어요. 언제부터 사용 가능하다는 안내도 없으니 기약 없는 불편만 가중되고 있죠. 답답한 노릇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모델 '아이오닉5'로 개인택시를 운영 중인 김씨는 인천국제공항의 소홀한 전기택시 대응을 지적했다. 최근 전기택시 운전자와 공항을 오가는 전기택시 수가 나날이 늘고 있는데 공항은 택시전용 충전기 설치와 운영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단 얘기다.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김씨의 지적은 ‘앓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림잡아도 족히 수백대 이상의 택시가 공항 내 택시전용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전기택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택시전용 주차장 전경.
인천국제공항 택시전용 주차장 전경.

그러나 주차장 한편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고작 4대. 그나마 전원이 꺼져 있어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전기차 충전구역 표시조차 없어 일반택시와 전기택시가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택시가 공항 내 다른 전기차 충전기를 쓸 순 없을까? 가능하지만 비효율적이다. 손님을 태우고 수십km를 달려 공항에 들어온 택시들은 다시 손님을 태우고 나가야 이익을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른바 ‘택시탑승존’에서 손님을 태우려면 먼저 택시 주차장에서 순번표를 뽑은 후 장시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대기 중 충전기 사용이 불가능한 지금은 공항을 나갈 배터리가 부족하다면 공항 내 일반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다른 방문자가 충전기를 사용 중이면 무작정 대기하면서 주차비도 내야 한다.

공항 내에서 일반 전기차 충전소를 이용 중인 전기택시.
공항 내에서 일반 전기차 충전소를 이용 중인 전기택시.

실제로 인천공항 동편 인근 일반 전기차 충전공간을 방문해보니 한 택시기사가 충전 중이었다. 그는 “평소엔 집에서 충전하고 나오더라도 오늘처럼 장거리 운전이 많은 날은 공항을 빠져 나가기 전에 충전이 필요하다”며 “여긴 주차요금도 있어서 20분만 충전하고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차요금이 없는 택시전용 주차장과 달리 공항 내 다른 주차장에서는 충전 중 주차요금이 유료다.
주차요금이 없는 택시전용 주차장과 달리 공항 내 다른 주차장에서는 충전 중 주차요금이 유료다.

택시는 공항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의 주된 이동수단 중 하나다. 공항 운행이 중점적인 기사도 있지만 고객 요청으로 가는 일도 적지 않다. 김씨도 “일주일에 2회 정도는 공항에 손님을 태우고 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충전이 불편하다고 공항을 마냥 피할 수도 없는 상황. LPG 택시 대신 전기택시를 마련한 기사들의 잘못일까? 그렇게 보긴 어렵다. 시내에서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듯 택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개인택시 기준 차량의 사용연한은 7년에서 9년 사이다. 최근 교체 시기가 도래한 기사들이 차를 바꾸려면 7년 뒤를 바라보고 전기택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택시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미 매년 수천대의 택시가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으며 출고를 기다리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전기택시는 유지비가 LPG 택시 대비 저렴하고 차체 진동이 적어 장시간 운행도 부담이 덜하다. 전기택시 기사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만 충분하다면 운전자나 정부의 친환경 대중교통 진흥 기조 측면에서나 전기택시를 기피할 이유는 적다.

그러나 2017년 4기를 시작으로, 공항 내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시작(현재 32기)한 인천공항은 정작 충전 수요가 높고 지속적인 택시 기사들은 우선순위 바깥에 두고 있었다. 기사들의 민원과 정부의 권고로 기껏 설치한 충전기 활성화도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서비스 개시 절차는 얼마나 진행됐을까? 이날 공항에서 확인한 전기택시용 충전기는 ‘안전검사 스티커’만 부착된 상태였다.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 후 실제 가동되려면 한국전력과 전기안전공사의 필증도 필요한데, 수개월 동안 이조차 완료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충전 사업자 선정도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인 결과 인천공항에 충전기를 납품한 제조사는 공항과 판매 계약만 맺은 상태였다. 이 경우 공항이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공모를 통해 전문 충전설비사업자(CPO)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국내 모 CPO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충전기 설치 후 서비스 개시까지 신고 및 계량기 설치, 안전점검 등을 거치면 2주일에서 1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며 “일반 아파트도 1달씩 걸리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공항처럼 규모가 크고 인력이 충분한 곳에서 3~4개월씩 지연되고 있는 상황은 이상한 일”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반면 인천공항 측은 충전소 운영 개시 관련 사항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란 입장이다. 공항 관계자는 “충전비용 산정과 청구 시스템 개발 및 운영인력 확보, 담당부서 인수인계에 문제가 없도록 점검 중”이라며 “담당 부서가 시스템 업데이트와 최종 점검을 진행 중이고 인허가 절차도 완료되면 빠른 시일 내에 서비스가 개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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