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美 전기차 충전 규격 '테슬라'로 대동단결...한국은?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기자
슈퍼차저 [ⓒ 테슬라]
슈퍼차저 [ⓒ 테슬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의 화두는 ‘테슬라 충전 규격’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충전 인프라를 보유한 테슬라가 자체 충전 규격을 개방하면서 여러 경쟁사가 잇따라 테슬라 규격을 도입하기로 발표한 까닭이다. 이를 두고 국내 충전 업계에선 “한국도 곧 테슬라 규격을 따를 것”, “기존 CCS1 규격을 고집할 것”이란 상이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질의, 더 많은 충전 인프라 확보는 전기차 전환 가속을 위한 공통의 숙제로 꼽힌다. 지난 6월 미국에서 GM을 시작으로 포드, 리비안, 볼보, 폴스타 등 굵직한 완성차 대기업과 유력 스타트업이 테슬라 충전 규격 도입을 발표한 이유도 이 때문으로 전해진다.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고 이미 미국 50개주 전역에 자체 고속충전기 ‘수퍼차저’ 인프라를 구축한 테슬라와 충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뒤늦게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제조사들 입장에선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에선 테슬라의 독자 충전표준 NACS(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와 CCS1(Combined Charging System)이 주로 사용됐다. 테슬라가 시장을 선점했지만 NACS를 경쟁사들에게 개방하지 않아 경쟁사들은 대안으로 CCS1을 택했다.

NACS 개방의 물꼬를 튼 건 미국 정부다. 자국에서 총 75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인프라 확대 프로그램 및 보조금 지급 정책을 결정하면서 충전 사업자의 보조금 수취 조건 중 하나로 CCS1 방식 채택을 요구했다. 독자 규격을 쓰는 테슬라에겐 슈퍼차저를 경쟁사 전기차에 개방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테슬라 입장에선 보조금 없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프라 구축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개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전기차 충전 규격 [ⓒ 한국자동차연구원]
다양한 형태의 전기차 충전 규격 [ⓒ 한국자동차연구원]

두 규격의 외형과 통신 프로토콜은 다르지만 어느 하나가 특별히 우월한 방식인 건 아니다. 따라서 경쟁을 장기화하기보단 조속히 하나의 규격으로 표준화가 이뤄져야 제조, 설치, 사용자 모두가 비용은 줄이고 편의는 제고할 수 있다. 전세계 스마트폰 충전기 규격이 점점 USB-C 타입으로 통일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번에 NACS 활용 의사를 밝힌 기업들은 기출시 모델에 대해선 NACS 어댑터를 제공하고, 향후 생산하는 전기차는 NACS 규격의 충전구로 제조하는 방식 등으로 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다. 미국 내 초급속 충전기 시장 점유율 1위인 SK 시그넷은 지난달 15일 NACS 커넥터를 적용한 충전기를 연내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월29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2030년까지 국내에 전기차 충전기 123만기 이상을 보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충전기 보급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대기업 계열사들도 잇따라 전기차 충전기 제조, 충전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면서 주목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미국과 동일한 CCS1 규격이 충전 표준 규격으로 지정돼 있다.

중국을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미국이 NACS로 통일되고, 단일 규격으로 자리잡을 경우 미국의 표준을 받아들인 국내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업계의 의견은 상반된다.

국내 한 충전기 제조사 관계자는 “북미에서는 빠르면 올해 안에 미국 전역에 NACS가 표준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CCS1을 표준으로 채택했던 국내 충전기 고객사들도 NACS 표준을 따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다만 아직 NACS 표준이 정립되지 않았고 해당 커플러(충전 케이블과 전기차 접속 장치)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부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통신 프로토콜이 CCS1과 유사해 NACS용을 개발하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NACS 규격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다른 업체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북미는 NACS로 변경할 수 있어도 국내는 CCS1을 고집할 것으로 본다. 테슬라도 유럽 시장은 현지의 ‘CCS2’ 충전 규격으로 수출한다. 국내도 굳이 변경할 필요가 없고, 자존심 문제도 있다. 국내에서 테슬라 커넥터를 제조하는 곳이 없어 전량 수입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NACS 전환이 이뤄지더라도 그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봤다. 국내 테슬라 드라이버들도 이미 테슬라 어댑터를 통해 기존 충전기들을 활용 중이며 기존 CCS1 충전기들도 테슬라 젠더를 부착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테슬라에서 표준 규격을 정립하고 이를 이용해 충전 케이블 등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나오면 수급도 비교적 쉬워진다. 충전기 제조사들 입장에선 NACS 방식을 따르는 것이 물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유지보수 방식도 CCS1과 동일하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