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위기의 방통위]③ 공영방송 장악 역사 반복될까…6기 과제는?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 14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남영진 KBS 이사장과 정미정 EBS 이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지난달 TV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 의결에 이어 전 정권 때 임명된 공영방송 이사진을 해임하며 이사진 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해임도 추진 중이다. 그동안의 행태를 미뤄보면 이 역시 강행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의결 과정은 최근 항상 같은 레파토리다. 현재 여야 2대1의 방통위 구조에서 주요 사안들은 야권 추천인 김현 위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발해 퇴장하면 여권 추천인 김효재 부위원장(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 2명의 찬성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아 막론 정권 교체기 혼란 지속…23일 김효재·김현 위원 임기 만료
방통위는 대통령 소속이지만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과 여야 추천을 받아 5인의 상임위원이 의결하는 합의제 행정기구다. 외형상으론 여야 합의제 기구이나 다수결로 안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현 정권의 입맛대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매번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방통위의 공영방송 장악 움직임에 방송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당장 오는 18일로 예정된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와 23일 여권 추천인 김효재 직무대행의 임기 만료를 앞두면서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실제 통상 수요일에 열리는 방통위 전체회의는 지난주의 경우, 이례적으로 월요일 오전 열리면서 야당 측 김현 위원은 김 직무대행에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일방적으로 일정을 왜 이렇게 조정을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며 “23일 임기 만료 전에 방송장악 하려는 것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가짜뉴스 대응 본격화
업계에선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부임해 6기 방통위가 시작되면,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김효재 부위원장과 김현 위원의 임기가 오는 23일자로 만료되면 차기 방통위는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 2인 체제로 시작한다.
현행법은 2인 이상 위원 요구가 있으면 회의를 소집할 수 있고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토록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방통위 운영에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여당 단독 법안 처리할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정부가 추진 중인 가짜뉴스 대응과 포털 알고리즘 투명성,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법제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 후보자에 청문회를 앞두고 본인에 대해 부적절하거나 부정적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사에 “불법행위이자 가짜뉴스”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론 방통위에 모든 언론 관련 기능을 통합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또, 미디어 법제개편과 플랫폼·통신 등의 사후규제 기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의 통신시장 경쟁촉진방안과 맞물려 단통법 개정과 알뜰폰 자급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 후견주의 최소화·정책 비전 제시 등 책임성 강화 노력
무엇보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방통위에 정책 기능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차기 방통위에선 정치 후견주의를 최소화하고 방송 산업 활성화를 위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현재의 방통위가 정상화되려면 정권을 견제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최근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의 개의정족수를 위원 3인 이상으로 명시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2인 이상의 위원 요구가 있을 경우나 위원장 단독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데, 이를 3인 이상 위원이 개의를 요구하도록 바꾸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는 상임위 조직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조직 운영, 사람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치적 후견주의에 따라 여야 3대2로 구성된 상황에서 이를 운영하는 조직의 의지에 기대는 구조는 현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업계 한 전문가는 “위원회 조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며 미국, 영국, 호주 등 다른 국가에서도 방송이나 사후규제는 위원회 조직을 채택하고 있다”며 “다만 이를 방송을 도구화시켜 정치적 헤게모니에 몰입하면서 산업적인 변화에 전혀 대응을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실제 방송사업자들은 광고매출을 디지털 광고매출에 주도권을 빼앗긴데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패스트TV) 플랫폼의 성장 등으로 생존경쟁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는 “이제 방송산업 활성화로 아젠다를 돌려야 할 때”라며 “방통위의 정책 기능이 사라지면서 실기하는 측면이 많은 만큼, 합의중심주의에서 전문직주의로의 전환 논의도 필요하다”도 제언했다.
방통위의 의사결정 전문성을 높이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선 현재 5명의 상임위 구조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4명은 비상임위원으로 주로 공정위 출신 공무원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한 방통위 전 상임위원은 “현 정권이 출범하지 벌써 1년 4개월인데 그동안 언론이나 산업정책으로 비전을 공개한 적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부분적으로는 지금 공영방송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지만, 더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미디어 산업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방통위는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결국 사라믜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며 “진영 대립이 격화되다 보니까 사회적 논의와 타협, 양보, 합의가 실종되면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크게는 이원화된 방송·통신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송업무는 방통위로, 통신 규제 및 진흥정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시켜야 하다는 것이다.
방통위와 과기정통부의 기계적 업무 분장이 심해지면서 사업자 부담만 가중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범정부 미디어 정책 컨트롤타워인 ‘미디어혁신위원회’를 내세웠지만, 지난 3월 정부·전문가 중심의 ‘미디어·콘텐츠산업발전위원회’가 출범하며 다소 힘이 빠진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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