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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화이트 품은 쿠팡…‘파페치’ 인수로 온·오프 명품 시장 정조준

이안나 기자
[ⓒ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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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던 쿠팡이 세계 1위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인수하며 글로벌사업 강화에 속도를 낸다. 그간 쿠팡 약점으로 꼽혔던 패션·명품 카테고리를 ‘파페치(Farfetch)’ 인수로 보완하고, 오프화이트 등 명품 스트릿 브랜드를 보유하면서 글로벌 20대를 고객층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18일(현지시각)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는 세계 최대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파페치에 5억달러(한화 약 6515억원) 자금을 투입하고, 쿠팡Inc 투자사 그린옥스 캐피탈과 함께 파페치 사업과 자산 인수를 위한 합자회사 아테나를 설립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아테나 지분은 쿠팡Inc가 80.1%, 그린옥스 펀드가 19.9%를 보유한다.

김범석 쿠팡Inc 창업자 겸 CEO는 “파페치는 명품 분야 랜드마크이자 온라인 명품이 명품 리테일의 미래임을 보여주는 변혁의 주체”라며 “앞으로 파페치는 비상장사로 안정적이고 신중한 성장을 추구함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브랜드에 대한 고품격 경험을 제공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오프화이트 보유, ‘에·루·샤’ 입점…파페치는 어떤 기업?=파페치는 국내 소비자들에겐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글로벌 명품 플랫폼 1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설립된 파페치는 전세계 190개국에 1400개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명품업체들을 소비자와 연결하며 급속도로 성장한 후, 2018년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파페치는 전세계 백화점·부티크를 이커머스와 연결해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희소성 있는 상품들을 판매한다. 특징은 파페치가 플랫폼 기업임과 동시에 오프화이트, 팜 엔젤스 등 10가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뉴가즈 그룹’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뉴가즈 그룹 브랜드들은 전세계 20대 초중반 소비자들 선호도가 높다.

대표적으로 오프화이트를 세운 고(故)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과 디자인한 ‘에어포스 원’은 자선 경매에서 최고가 35만2800만달러(4억3000만원)을 기록하며 낙찰됐다. 오프화이트와 나이키가 협업한 ‘조던1 하이 시카고 더 텐’은 1100만원대까지 상승하며 ‘명품 스니커즈’ 열풍을 불러왔다. 루이비통이 오프화이트 지분을 2021년 60% 가량 인수했지만, 브랜드 라이센스와 영업권은 뉴가즈가 2035년까지 갖고 있다.

팜 엔젤스 역시 20대 초중반 ‘젠지세대’ 사이 유행하는 명품 패션 브랜드다. 2015년 출시 이후 미국,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인기가 확대되면서 올해 프랑스 파리, 서울 신사동에 부티크 매장을 열었다. 쿠팡은 전세계 젠지세대들에 인기 많은 스트릿 브랜드 명품 라이센스를 갖게 되면서 순식간에 ‘글로벌 명품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건물 외관에 부착된 파페치 로고 [ⓒ 연합뉴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당시 건물 외관에 부착된 파페치 로고 [ⓒ 연합뉴스]

◆ 부도 직전 파페치 살린 쿠팡…업계 “국내 영향력 두고봐야”=쿠팡이 파페치 인수를 발표한 시기는 공교롭다. 1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즈 등 외신에선 파페치가 최근 부도 위기에 처했다며, 연내 파페치가 5억달러 자금을 구하지 못한다면 도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승승장구하던 파페치가 뉴욕상장 후 각종 브랜드를 고비용을 들여 인수해 과욕을 부린다는 평을 받았고, 최근 명품 수요 정체로 매출 하락까지 겪는 등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파페치는 한때 시가총액이 30조원에 달했지만 최근 3000억원대로 하락했다”며 “6500억원으로 인수한 것은 실상 파페치 주주들이 손해보고 포기한 것이다. 쿠팡이 이전부터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파페치 기업가치 하락은 한편으로 쿠팡에 기회가 됐다. 파페치가 지난 2019년 뉴가즈 그룹을 약 8000억원에 인수했는데, 4년이 지난 2023년 쿠팡은 뉴가즈 그룹을 포함한 파페치 전체 비즈니스를 6500억원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파페치가 경영난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했을 때 쿠팡이 등판에 이를 인수하면서, 파페치가 보유한 스트리트 브랜드들 역시 기사회생했다.

쿠팡Inc는 “쿠팡의 탁월한 운영 시스템과 물류 혁신을, 럭셔리 생태계를 이끈 파페치의 선도적인 역할과 결합해 전 세계 고객과 부티크, 브랜드에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쿠팡 로켓배송 등 빠른배송 역량을 파페치 명품 유통에 접목할 것으로 유추된다.

쿠팡이 파페치 인수에 나선 건 온라인 패션·명품 시장 성장 잠재성이 높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글로벌 개인 명품 시장 규모를 4000억달러(약 520조)로 추산하고 있다. 그간 쿠팡은 ‘로켓럭셔리’관을 운영하긴 했지만, 생필품에서 강점을 보이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내에선 백화점을 기반으로 한 롯데온·SSG닷컴 등과 비교해 쿠팡럭셔리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다.

쿠팡은 기존에 있는 글로벌 명품 플랫폼 인수하면서 빠르게 명품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택했다. 파페치는 명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뿐 아니라 영국 ‘브라운’, 미국 ‘스타디움 굿즈’ 등 오프라인 명품샵도 운영하고 있다. 쿠팡은 파페치 인수로 주요 브랜드와 주요 온오프라인 유통채널을 보유하게 됐다.

다만 쿠팡이 파페치와 어떤 방향으로 시너지를 만들어갈지는 아직 지켜볼 대목이다. 양 플랫폼을 점진적으로 연동하거나 쿠팡에 파페츠를 입점시켜 ‘로켓배송’을 운영하는 걸 예상할 수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해외 명품 플랫폼 사이에서 파페츠 가격이 다소 높다는 지적도 있어 가격경쟁력 확보 방안도 고심해야 한다.

국내 사업에 치중했던 쿠팡이 이번 기회에 K-패션 글로벌 진출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파페치에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 ‘우영미(WOOYOUNGMI)’와 ‘송지오(SONGZIO)’, ‘스튜디오 톰보이(신세계인터)’ 등 10가지 한국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페츠가 해외에선 1위 플랫폼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겐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라며 “쿠팡이 글로벌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겠지만 파페츠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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