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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공습에 규제까지?…자율규제 무색해진 이커머스 ‘울상’

이안나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고물가 장기화로 이커머스 업체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대내외적 요인들이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염려를 키우고 있다. ‘초저가’를 내세워 국내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중국 플랫폼 진출에 더해, 정부에선 대형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규제 법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이커머스 업계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한다는 발표에 우려를 표한다.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주요 플랫폼 업체들은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자율규제에 적극 참여해 다양한 상생방안을 도출한 바 있다. 소상공인·소비자 상생을 위해 판매수수료를 동결하거나 대금 정산주기 단축, 금융비용 지원 제도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율규제와 별도로 독과점을 규제한다는 최근 정부 행보는 이들에게 당혹감을 안기고 있다. ‘갑을’ 문제와 ‘독과점’ 문제는 별도라는 공정위 입장과 달리, 업계선 독과점 이슈에도 갑을 문제가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은 고물가 시대 소비자에게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중소상공인들도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판로 개척도 꿈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사전규제는 불필요한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우려다. 결국 소상공인·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 경쟁촉진법을 추진하는 공정위 취지와 반대로, 온라인에 진출하려는 소상공인에 장벽이 생기고, 소비자 후생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기업과 해외기업에 똑같이 법을 적용하도록 정부가 집행력을 가져야 하는데, 실상 해외기업들은 결제 시스템이나 서버가 국내에 없고 공시도 하지 않아 집행력을 갖기 쉽지 않다”며 “결국 규제받는 국내기업만 경쟁력이 도태되고 매출이 떨어져 부득이 수수료를 올리면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꼬집었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해외 플랫폼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완전경쟁 상태다. 이커머스는 네이버와 쿠팡 위주로 재편되고 있지만 어떤 변수가 생겨 점유율 순위가 바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실제 국내에서 쿠팡이 크게 성장하자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대규모 광고와 초저가 할인 공세로 급격히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하고 자사우대와 멀티호밍 제한 등 플랫폼 시장 반칙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관건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정의하는 ‘기준’이다. 아직 공정위는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매출액·시장점유율 등 정량 요건과 시장 진입이 자유로운지 등 정성 요건을 함께 살펴보겠다고 언급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를 줄일 수 있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들이 들었을 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소수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사전규제 대상 기업 지정을 앞두고도 추상적으로 언급하는 공정위 입장에 업계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아직까지 ‘플랫폼’에 대한 정의조차도 분명하지 않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커머스 플랫폼만 하더라도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 등은 모두 사업모델이나 성격이 다르다. 각 기업이 속한 분야에서 기술과 마케팅을 고도화해 소비자 선택을 받고 영향력을 확대했지만, 돌아오는 건 사전규제 위협이 된 셈이다.

플랫폼 경쟁촉진법 대상에 포함된 기업의 경우, 시장 획정과 지배력 평가를 미리 진행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재조치 부과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존 2~5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함이라는 게 공정위 측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 역시 업계에선 공감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제재조치를 내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현 공정거래법이 오프라인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면, 새로운 시장획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CJ올리브영은 입점업체들에 경쟁사 입점을 금지시키는 ‘갑질’로 공정외로부터 과징금을 받았다. 공정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판매채널 간 경쟁구도가 강화되는 상황인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했다.

공정위는 CJ올리브영 사례에서 화장품(뷰티) 시장을 두고 “앞으로 경쟁구도가 어떻게 바뀌고, 실제 경쟁사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 단계에선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상 H&B 오프라인 스토어보다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도 전했다.

공정위가 플랫폼 경쟁촉진법에서 금지하는 4가지 행위 중 하나는 경쟁 플랫폼 이용을 제한하는 ‘멀티호밍 제한’이다. 실상 CJ올리브영 행위 역시 ‘멀티호밍 제한’에 속한다.온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만을 대상으로 규제 법안을 만드는 데 업계가 당황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면 새롭게 시장 획정을 하도록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법안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유럽이 진행하고 있으니 우리도 하자는 식으로 먼저 법을 만들려 하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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