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기업법률리그 42] 저작권의 국제적 권리소진에 관한 대법원 판결 소개

원준성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저작권자는 저작물에 대한 복제권, 배포권 등을 독점하므로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배포하려는 자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판매하는 속칭 ‘짝퉁’ 제품의 판매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행위로서 금지된다. 그렇다면 적법하게 구매한 음반이나 서적과 같은 '정품을 재판매'하는 경우는 어떤가. 재판매 행위도 배포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역시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재판매하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재판매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배포권에 관한 별도의 허락을 매번 받아야 한다고 본다면 중고거래 시장은 존속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저작물의 자유로운 거래와 유통의 필요성, 중고거래 시장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론이 옳지 않음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정품의 재판매에 대하여는 저작권자의 배포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법원리가 필요하다.

'권리소진의 원칙(exhaustion of right)' 혹은 '최초판매의 원칙(first sale doctrine)'이라 불리는 법원리는 이러한 경우에 관한 배포권 제한원리이다. 저작권자는 '최초의 판매행위'로 인하여 저작물에 대한 보상의 기회를 가졌으므로 그 '권리가 소진'되었다고 보아 적법하게 구매한 정품 음반이나 서적을 재판매하는 경우와 같은 재배포행위에 저작권의 효력이 미칠 수 없다고 보는 원칙이다.

우리 저작권법 역시 같다. 저작권법 제20조는 저작권자의 배포권을 규정하면서도,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단서 규정을 두어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화 하고 있다. 따라서 ①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②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이라면, 쉽게 말해 적법하게 거래된 정품이라면 그 재판매를 주저할 이유는 없다. 중고거래 시장이 존속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해외에서 국내로 정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경우에는 조금 더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저작권자들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판매정책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수입판매 행위에 대하여도 배포권이 소진되었다고 본다면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국가별 가격정책이 수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저작권자의 가격정책을 보호하기 위해 저작물의 자유로운 거래와 유통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는 국제적 권리소진의 인정여부에 관한 논의로 '진정상품 병행수입'의 적법성에 관한 문제이다. 진정상품 병행수입이 상표법적 측면에 있어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은 있었으나 저작권법적 측면에서의 판단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번 대법원 2023. 12. 7. 선고 2020도17863 판결로 대법원의 입장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직접 수행한 사건이기도 하여 그 판결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① 도라에몽 캐릭터의 저작권자인 A는 중국 기업 B에게 중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하였고, B는 다시 중국 기업 C에게 완구 제품 판매권을 위임하였다. ② 국내에는 저작권자 A로부터 국내 상품화권을 부여 받은 기업 D가 있었다. ③ 위 사건의 피고인은 C로부터 도라에몽 완구 제품을 직접 수입하여 국내에서 그 제품을 이전받아 판매하였다.

위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이 중국 내 적법한 판매권을 가진 C로부터 구매한 도라에몽 완구를 국내에 수입하여 판매한 것이 저작권법 침해행위를 구성하는지, 즉 C로부터의 정품 수입행위로 배포권이 소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먼저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다면 저작재산권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의 기회를 가졌던 것이고, 이미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은 그 이후에는 자유롭게 유통될 필요가 있으므로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은 그 목적을 달성하여 소진된다. 저작권법은 제20조에서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여 저작재산권자의 배포권에 관한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고 판시하여 저작권법 제20조가 권리소진의 원칙을 규정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대법원은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외국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되어 그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된 경우에는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 소진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한편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었던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하여 배포하는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효과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위 판시 후문에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에서 정한 효과'는 저작권자의 배포권이 소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정상품의 병행수입 행위는 권리소진 원칙에 따라 저작권법상 허용된다는 취지의 판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작권자의 배포권에 국제적 권리소진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한 첫 번째 대법원 판례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다만 유의할 것은 대법원은 외국의 최초 판매자로부터 직접 수입되어 국내에서 저작물의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되는 경우는 국제적 권리소진이 문제가 아니라 국내에서의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적용문제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즉 저작물이 외국에서 양도된 이후 국내로 수입되는 경우와는 달리 직접 수입행위로 인하여 국내에서 비로소 소유권 등이 이전되는 경우는 외국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유권이나 처분권의 이전 시점'이 권리소진 원칙에서의 '거래에 제공' 판단기준이 됨을 판시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의미가 적지 않다.

이 사건 사례를 살펴보면 조금 더 쉬운 이해가 가능하다. 앞서 본 것과 같이 이 사건의 피고인은 중국 판매자 C로부터 직접 도라에몽 완구를 수입해 국내에서 도라에몽 완구를 양도 받아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위 대법원 판시에 따른다면 저작물이 '거래에 제공'된 행위인 위 수입행위는 소유권이 이전된 곳인 국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국내를 기준으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해당 여부를 검토하면 족하다. 그런데 판매자 C는 중국 내 판매권만을 부여 받았을 뿐, 한국에서의 판매권은 부여받지 못했으므로, 국내에서의 판매는 저작재산권자의 이용허락 범위 외의 판매이다. 따라서 C의 판매행위는 곧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요건인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않고 존속한다. 이 사건의 피고인에게 저작권침해행위의 죄책이 인정된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반면 위 사건의 피고인이 판매자 C로부터 중국 내에서 도라에몽 완구를 구입하여 그 소유권을 취득한 이후 이를 국내로 수입한 경우에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이 경우는 외국에서 저작물이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하고, 판매자 C는 중국 내에서의 적법한 판매권한이 있었으므로, 결국 저작권자 A의 허락 아래 저작물이 거래에 제공된 것이 되어 중국 내에서의 판매로써 저작권자의 배포권은 소진되며, 따라서 이후의 수입행위는 배포권 침해를 구성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배포권에 관한 국제적 권리소진 적용여부 및 그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므로, 수출입업무 관련 종사자들은 그 내용을 반드시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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