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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김연수발 한컴 M&A 본격화…곁눈질은 그만, SW 본업에 충실?

이종현 기자

2023년 11월28일 AI 전략 발표회에서 기업 청사진을 공유 중인 김연수 한글과컴퓨터 대표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리포팅 툴 솔루션 기업 클립소프트를 시작으로 지능형 자동화(Intelligent Automation, IA) 시장 공략을 위한 크고 작은 M&A가 이어질 전망이다.

5일 한컴은 클립소프트 인수를 발표했다. 구체적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지분을 사들였다. 2022년 MDS테크(구 한컴MDS)를 매각하며 자금을 확보한 이래 첫 M&A 사례다. 클립소프트를 시작으로 추가 인수 및 투자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철 회장→김연수 대표, M&A 피 흐르는 한컴家

한컴의 역사는 M&A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 창업 이후 2010년까지 8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의 안정적인 한컴 체제가 굳어진 것은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인수하면서부터다.

김상철 회장은 M&A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공격적인 M&A를 통해 2010년 매출액 472억원 기업을 2022년 연결기준 2420억원까지 키웠다. 이마저도 MDS테크를 매각하며 줄어든 것으로, 2021년에는 연매출 4000억원을 넘었다.

김 회장 체제에서의 한컴은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보다는 돈이 될 만한 사업인가가 M&A의 주요 고려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MDS테크와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 기업인 MDS테크는 매각 직전까지 한컴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안전장비 기업 한컴라이프케어를 인수할 때는 정보기술(IT) 업계 대부분이 우려를 나타냈으나 인수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한컴은 2022년부터 김 회장의 장녀인 김연수 대표가 지휘권을 쥐고 운영 중이다. 김연수 대표가 가진 특장점 역시도 김 회장과 마찬가지로 M&A에 있다. 그는 대표 선임 전부터 MDS테크, 한컴인스페이스, 한컴케어링크, 한컴프론티스 인수 등 한컴의 M&A 실무를 도맡아 온 인물이다.

한컴은 2022년 한컴MDS를 비롯해 ▲한컴로보틱스 ▲한컴모빌리티 ▲한컴인텔리전스 ▲한컴인터프리 ▲한컴카플릭스 ▲스탠스 등 11개 자회사를 매각하며 사업을 재편했다. 이때 마련된 자금이 950억원이다.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에 재투자할 것이라고 밝혔고, 1년 이상 숙고 끝에 클립소프트 인수가 발표됐다.

◆본업 SW 집중하는 김연수 대표, 클립소프트 인수 행보와 맞닿아

과거 김 회장 체제에서 한컴 M&A 특이점은 각 사업 간 연관성이 낮았다는 점이다. 오피스 SW를 제공하는 한컴의 주요 관계사가 임베디드SW(MDS테크), 안전장비 기업(한컴라이프케어)이라는 데서 다소의 괴리가 있었다.

김 대표 체제에서의 한컴은 다시 본업인 SW에 집중하는 듯한 모양새다. 대표 제품인 한컴오피스를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로 제공하는 등 클라우드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또 복수의 기능이 하나의 제품으로 패키징돼 있는 것을 분해해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 및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B2B)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컴오피스에 녹아져 있는 텍스트 입력, 표‧차트 생성, 이미지‧영상 삽입, 전자서명, 광학문자인식(OCR) 등 개별 기능을 사업화한다는 전략이다.

클립소프트 인수는 한컴의 최근 행보와도 일맥상통한다. 클립소프트는 공공·금융·병원·교육 등 기관과 기업에 표준 HTML5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리포팅 솔루션 ‘클립리포트’와 전자서식 솔루션 ‘클립이폼’을 개발·공급하는 전자문서 기업이다. 공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데, 기업 간 시너지가 기대된다.

ⓒ한컴

◆클립소프트는 시작일 뿐, 추가 인수·투자 지속될 듯

한컴의 인수 행보가 클립소프트에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컴은 지난해 11월 인공지능(AI) 사업 전략 발표회를 개최하며 미래 청사진을 공유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문서 작성 도구 ‘한컴 어시스던트’를 내년 상반기 베타 버전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당시 김 대표는 “내년은 한컴의 AI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한컴 어시스턴트를 중심으로 회사의 IA를 통해 관련 시장을 계속 공략해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이는 한컴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타 기업들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이에 한컴은 네이버클라우드, KT클라우드, 파수, NHN, 삼성SDS, 포티투마루, 셀바스AI 등이 포함된 ‘한컴 얼라이언스’를 발족했다. M&A와 함께 기업간 파트너십 확대로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포부다.

한컴이 최근 LG유플러스로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은 포티투마루에 직접적인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중이다. 포티투마루는 AI 기반 검색‧챗봇‧OCR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자체 개발한 소형언어모델(sLLM) ‘LLM42’가 우수한 성능을 입증한 전도유망한 곳으로, 현재 한컴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한컴이 15억원을 투자한 협업툴 ‘잔디’의 운영사 토스랩도 한컴과의 시너지가 기대되는 기업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한컴에 쏠리는 기대… 또 ‘한컴’할 거란 회의론도

IT 업계에서는 한컴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산발적인 투자 대신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는 모습에 기대를 걸 만하다는 긍정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구심점 없이 사업을 확장하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행보는 각 사업간 연관성이 쉬이 그려진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기조다.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컴은 작년 3분기 메타버스 계열사이던 한컴프론티스의 지분 63.4%를 매각했다. 한컴은 2022년 MDS테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MDS테크의 연결 자회사였던 한컴프론티스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는데, 메타버스에 대한 인기가 빠르게 식자 이를 정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한컴이 지분을 사들인 뒤 뚜렷한 성장을 보이거나 시너지가 난 전례가 드문 만큼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한컴프론티스가 그 예다. M&A로 로봇‧디지털트윈 등에도 진출했지만 역시나 별다른 성과 없이 MDS테크와 함께 매각했다. 한컴라이프케어도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대란으로 큰 성과를 거뒀지만 반짝 성공에 그치고 현재는 적자로 전환했다.

싸이월드제트와 함께 개발한 ‘싸이타운’은 한컴의 흑역사다. 싸이월드제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를 부활시키고, 한컴이 메타버스 플랫폼인 ‘싸이타운(구 싸이월드 한컴타운)’을 오픈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오픈일에 정작 싸이월드는 열리지 않고 결국 싸이타운만 오픈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년 10월 싸이타운은 청산 절차를 시작했다.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사업에 이르러서는 약 1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 회장이 한컴의 최대주주인 한컴위드가 투자한 암호화폐 아로와나토큰의 시세를 불법 조종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아들 김모씨에게 넘겼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12월13일 김 회장의 아들은 검찰에 구속, 12월29일 기소됐다.

김연수 대표는 “아버지와 동생간 일어난 일이 사실 여부를 떠나 한컴 법인, 본인과 무관하다”면서도 “한컴이 추진 중인 사업과 계획 중인 사업 역시 이번 이슈와 상관 없이 모두 차질 없이 진행된다. 책임 경영과 정도 경영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과는 별개라곤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간 상황인 만큼 변화의 노력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는 중이다.

긍정론과 회의론이 공존하는 가운데 올해가 1세대 SW 기업인 한컴이 재도약할 수 있을지 판가름 나는 해가 될 것이라는 데는 산업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경쟁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생성형 AI를 도입함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혁신이 없다면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 IT 업계의 시각이다.

한편, 최근 공시된 한컴의 지난해 3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컴 최대주주는 21.5% 지분을 보유한 한컴위드다. 한컴위드는 김상철 회장이 15.7%, 김연수 대표가 9%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컴의 2대주주는 김연수 대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HCIH로, 10.3%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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