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확률형 아이템과 거리 두기, 아파도 어쩌겠나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확률형 아이템은 명과 암이 뚜렷한 게임사 수익모델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과거 이용자가 게임을 월 정액제 등 유료로 즐기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자, 대안으로 게임 내 요소를 유료로 구매하는 부분 유료화 서비스를 도입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러한 서비스의 대표 사례다. 게임사가 정한 일정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차등한 등급의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타 유료 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익성을 자랑한다. 이용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자동차 한 대 값이 우스운 경우도 다반사다. 이에 몇 년 전부터는 업계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익모델로 자리매김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업계의 급격한 성장을 견인했지만 이면에 짙은 그늘도 낳았다. 확률형 아이템을 더 많이 판매하려면 이용자 간 경쟁을 부추겨야 했고, 이에 효과적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만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공성전 등으로 이용자 경쟁을 극대화한 ‘리니지’ 시리즈가 크게 흥행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들불처럼 게임업계로 번졌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게임 생태계는 타이틀과 그래픽만 조금씩 손 본, ‘재미’라는 본질은 망각한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로 황폐해졌다.
몰개성화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게임업계가 지난해 나란히 보릿고개를 맞은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중국 당국이 확률형 아이템 등 페이투윈(돈을 쓸수록 강해지는 게임 구조) 요소를 겨냥한 고강도 규제안을 발표하자 국내 게임주가 일제히 흔들린 것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종속된 게임업계의 기형적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 전반의 위기는 불황 등 대외적 상황을 떠나, 게임업계가 자초한 부분도 적지 않은 셈이다.
매출이 뒷걸음질하고 정부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체질 개선은 불가피해졌다. 업계는 장르와 플랫폼을 다변화하고, 새 지식재산권(IP)을 발굴하는 등 뒤늦게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페이투윈 요소를 뺀 작품으로 서구권 시장을 노리는 움직임도 보인다.
적잖은 성과도 있지만 성장통도 감지된다. 리니지 개발사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는 지난해 12월 출시한 신작 MMORPG ‘쓰론앤리버티(이하 TL)’에서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시도했다. 자동사냥‧이동 기능을 삭제하고 확률 요소를 전면 배제한 수익모델을 내세워 관심을 모았으나, 변화한 이용자 니즈에 맞는 게임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흥행 부진을 겪고 있다.
업계 생태계와 밀접한 확률형 아이템과의 거리 두기는 수익성 저하 등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지만, 업계 지속성을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 본격화될 올해는 국내 게임업계의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한국 게임은 그간 국내 콘텐츠 수출액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수출 작품 상당수가 페이투윈 성격이 짙어 국제적 이미지나 위상은 가요나 영상 콘텐츠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한국 게임이 ‘가챠’나 ‘슬롯머신’이 아니라, 참신한 게임성으로 전 세계 게이머 입을 오르내리는 콘텐츠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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