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전산 혁신③] 공공SW사업 대기업 문턱 낮춘다…업계 파급효과는?
정부가 행정전산망 장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 대책'을 마련했다. 장애관리 체계 정비와 인프라 전반을 전면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만큼 국내 IT장비 및 구축업체들로선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디지털데일리>는 이번 정부 발표를 통해 분주히 움직이게 될 ICT 시장을 조망한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대기업들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문턱이 낮아진다. 정부가 지난 행정전산망 장애를 계기로 공공SW 사업에 적용됐던 대기업 참여제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막혔던 공공SW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면서, 실제 공공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형 사업들을 발주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대기업 진입규제를 통해 시장을 확보하고 성장해온 중소·중견기업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 700억 이상 공공SW 사업에 대기업 참여 허용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처합동으로 추진하는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대책(이하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공공SW 사업의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으로, 그동안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모든 공공SW 사업에서 참여가 제한됐다. 다만 국가안보·신기술 분야에서만 예외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대기업의 시장 독점을 막고 중소기업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공공SW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한 현재, 공공SW 사업을 더욱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터지며 대기업 진입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과기정통부가 종합대책을 통해 이번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앞으로 ▲정보화전략계획(ISP) 등 설계·기획 사업을 전면 개방해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700억원 이상의 대형 공공SW 사업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할 방침이다. 두 가지 모두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을 통해 추진한다.
◆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기업들 ‘내심 환영’
이렇게 대기업 참여 길이 열리게 되면서, 그동안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형성돼 온 공공SW 시장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삼성SDS·LG CNS·SK C&C 등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기업들의 공공 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그동안 국가안보나 신기술 등과 관련된 공공SW 사업에서는 이미 예외를 인정받아 참여를 해 왔다. 삼성SDS가 참여한 교육기관용 3세대 나이스(NEIS)나, LG CNS 컨소시엄이 참여한 보건복지부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복지로) 등 구축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들은 이번 결정을 내심 환영하면서도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참여 기준인 700억원을 넘는 공공SW 사업이 별로 없는 만큼, 더 전향적인 규제완화를 해줬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읽힌다. 또한 공공SW 사업의 리스크 대비 낮은 수익성을 감안하면, 대기업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진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대기업 계열 업계 관계자는 “일단 700억원 이상 사업이 과연 많이 있을까 의문이 들고, 또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것뿐이지 실제 사업 수주는 다른 얘기”라며 “그런 점에서 과연 참여제한이 풀리기 전후에 크게 다른 게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규제완화로 대기업들이 일정 정도 득을 볼 것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강도현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지난 31일 브리핑에서 “대형 사업의 시장 규모와 대기업 참여 여부 및 비율을 확인해 보니, 700억원 이상 사업에서는 예외 심의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에서도 대기업이 참여하는 비율이 70% 이상일 정도로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대기업 진입규제로 커온 중소·중견업계 우려 커져
반면 중소·중견기업들은 이번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가 공공SW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들 기업 사이에선 정부가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는 공공SW 시장에 대기업 입장만 반영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관련 중소·중견기업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중소·중견 업계에서는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 예외적으로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사실 대기업이라고 해서 꼭 기술력이 앞서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반영이 안되고 오히려 대기업 진입을 위한 조건만 일방적으로 완화된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700억원 이상 공공SW 사업이 현재 많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 진입규제가 완화돼도 중소·중견기업에 미칠 영향이 적을 것이란 정부의 전망에 대해서도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700억원 이상 사업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공기관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발주기관이 이것저것 통합발주를 해서 일부러 사업규모를 7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공공SW 시장에서 대기업 진입이 본격화될 경우 중소·중견기업은 설 자리를 더욱 잃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기존 규제를 통해 기업규모를 한층 키울 수 있었던 아이티센(쌍용정보통신)·대신정보통신·메타넷디지털 등 중견 IT서비스 기업들에 가장 큰 타격이 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정책 발표에 대해, 중견SW기업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대기업참여제한 제도 관련 개편안은 한마디로 오직 대기업들을 ‘금액에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공공SW사업에 참여시키겠다는 뜻으로, 현행 소프트웨어진흥법 제48조의 파기나 다름없다”며 “지난 10년간 정부의 정책을 줄곧 신뢰하고 투자와 연구를 거듭하여 오늘날 각 분야의 도메인 기업으로 우뚝 선 중견SW기업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고 강력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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