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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40년] ⑨ ‘스무살의 011 TTL’…대규모 브랜드 전환

바르셀로나(스페인)=김문기 기자

전세계 내노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총출동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에서 올해도 SK텔레콤은 메인홀 중심에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을 글로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통사를 넘어, AI 컴퍼니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 40년을 조망해보고 미래 ICT 개척자로서 SK텔레콤의 비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1999년.

조정남 SK텔레콤 사장실.

‘똑똑’

“들어오시게.”

“젊은 층을 겨냥한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했습니다. 이에 맞게 신규 브랜드도 론칭했습니다. TV CF 광고도 제작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

“나는 이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아! 이해가 안되십니까. 그럼 다행입니다. 성공입니다.”

“!?”

TV에서도 스크린에서도 하물며 신문지면에서도 보지 못했던 낯선 한 소녀가 물속에서 오르골을 돌리고 손안에 공기를 움켜쥐고 있다 손을 펼친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 물속에서 나온 소녀가 꽃잎을 베어 문다. ‘TTL’이라는 문구가 나타나면서 끝나는 CF 광고.

그간 자사 이동통신의 강점을 표현하기 위해 직관적인 내용을 연출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를 뿐만 아니라 이해조차도 할 수 없는 광고. 게다가 ‘TTL’은 또 무슨 뜻일까.

결과적으로 조정남 사장은 이 광고를 승인했다. 그 결정은 전국을 들썩일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999년 7월 실제 그 광고가 전파를 탔다. ‘스무살의 011, TTL’. 중장년층에게는 인기가 있으나 PCS에 밀려 젊은 층을 공략하지 못했던 SK텔레콤에게 이 판단은 신의 한수였다.

SK텔레콤은 이 광고 촬영을 올림픽 수영장에서 진행했다. 수중 하우징 특수장비가 도입돼 5명의 특수촬영팀이 나섰다. 제작팀은 산소통을 메고 3일간 광고 촬영을 감내해야 했다. 모델은 잠수통도 쓰지 못해 3일 동안 물속 촬영을 위한 3주간의 훈련을 감내해야 했다.

광고가 전파를 타자마자 전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벌어졌다. 대체 이 배우가 누군지가 가장 궁금했다. SK텔레콤은 끝까지 이를 숨겼다. 방송국 PD들 역시 공개수배할 만큼 열성을 보였으나 결국 정체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 모델이 배우 임은경인지 알고 있으나 당시에는 이름조차도 생소했다. 그리고 ‘TTL'의 의미는 현재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됐다.


TTL 광고 포스터
TTL 광고 포스터

젊은 옷을 입은 SKT

TTL 광고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SK텔레콤은 1999년 당시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9년 8월 30일 국내 이동통신 사입자 2천만 명을 돌파할 당시 SK텔레콤은 842만 명을 유치해 41.4%를 기록했다. 한국통신프리텔이 386만 명으로 19%, 신세기통신은 290만 명으로 14.2%, LG텔레콤 280만 명으로 13.8%, 한솔PCS가 236만 명으로 11.6%를 나타냈다.

점유율은 높았으나 더 뚫고 올라갈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 SK텔레콤은 ‘스피드 011’을 통해 1위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높은 요금으로 인해 중장년층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젊은 층을 겨냥한 PCS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24세의 젊은 층을 겨냥한 새로운 브랜드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TTL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 사의 마케팅 전략은 TTL을 시작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SK텔레콤은 대학가에 TTL존을 세우고 TTL 멤버십을 내놓는 등 고객층 확보에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TV CF 광고 역시 일대 변혁을 이뤘다. 이후 물고기 화석을 걷는 소녀와 미친듯한 토마토 세례를 받는 소녀, 깨진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소녀 등 신비주의를 표방한 후속 광고들이 연달아 히트를 쳤다.


브랜드 패러다임 전환

SK텔레콤이 일으킨 TTL의 반향은 남은 이통4사까지 전염됐다. TTL의 기세를 잡지 못한다면 절반 이상을 SK텔레콤에게 내줘야 했다. 게다가 SK텔레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팅(Ting)’ 브랜드까지 신설하면서 기세몰이에 나섰다.

한국통신프리텔(KTF)은 ‘016. Na’를, LG텔레콤은 ‘카이’ 브랜드를 신설해 TTL 견제에 나섰다. ‘016. Na’는 당시 무명배우였던 김상경과 박용진을 등장시켜 복고 열풍을 일으켰다. LG텔레콤은 TTL과 마찬가지로 신비주의를 표방하며 배우 이정재와 전지현을 출연시켰다. 전용 휴대폰뿐만 아니라 패션계와도 손을 잡았다.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KTF는 ‘비기(Bigi)’를 내놓고 배우 신세경을 모델로 기용했다. LG텔레콤은 사람이 아닌 캐릭터 ‘홀맨’을 내세웠다.

광고계는 점차 스토리를 쌓아 나갔다. 한솔PCS는 배우 김정은과 차태현을 통해 코믹광고를 선보였다. “묻지마, 다쳐”라는 광고 카피는 대히트를 쳤다. 이후 차태현과 김민희, 신민아를 내세운 광고에서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행문구를 만들어냈다. 가수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임재범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은 이 때 광고를 통해 큰 인기를 구가했다.

무엇보다 이같은 이통5사의 광고대전은 국민들에게 큰 웃음과 동시에 재미를 안겨줬다. IMF로 인해 어려움에 빠졌던 국민들이 이러한 광고를 통해 한번이라도 웃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스페인)=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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