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기업법률리그 48] 명품 가방 ‘리폼’의 상표권 침해 여부

안태규
안태규 변호사. [ⓒ 법무법인 민후]
안태규 변호사. [ⓒ 법무법인 민후]

[법무법인 민후 안태규 변호사] 사용한지 오래되서 낡은 명품 가방 등을 해체하여 핸드백, 지갑 등 전혀 다른 형태로 리폼하는 경우를 TV나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미 내가 구입했으면 내 물건이니 그 이후에 이것을 어떻게 변형하여 사용하던지 내 자유일 것 같은데, 최근 명품 가방의 리폼 행위에 대하여 상표권 침해를 인정한 판결이 나와 찬반 논란이 많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0. 12. 선고 2022가합513476 판결은 정확히는 명품 가방의 소유자로부터 의뢰를 받아 가방을 해체하여 리폼 제품을 만들어 준 ‘수선업자’에 대하여 명품 가방 회사에 대한 상표권 침해를 인정하고 1,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수선업자 측은 위 사건에서 ① 명품 가방 업체의 상표권은 해당 가방을 소비자에게 판매함으로써 소진되었고, 자신은 가방을 구매한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가방을 리폼하여 그 소비자에게 반환하였을 뿐이며(상표권 소진), ② 자신이 리폼한 제품은 소비자로부터 개별적으로 의뢰를 받아 리폼한 뒤 그 소비자에게 반환한 것이므로 양산성 및 유통성이 없어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지 않고, ③ 자신은 출처표시를 위하여 명품 가방의 상표를 사용한 것이 아니므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을 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① 원래 상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의 가공이나 수선을 하는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생산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상표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등)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수선업자의 리폼 행위가 단순한 가공이나 수리의 범위를 넘어 상품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로 본래의 품질이나 형상에 변경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상표권이 소진된 것으로 볼 수 없고, ② 상표법상 상품은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을 의미하므로 수선업자의 리폼 제품은 지갑 및 가방으로서 당연히 교환가치가 있어 양산성이 없더라도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며, ③ 이 사건 리폼 제품은 명품 가방 브랜드의 상표가 표시된 원단을 사용하여 외부에 명품 브랜드 상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므로 이 사건 리폼 제품 제작 행위는 상품 또는 상품 포장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로서 상표법상 상표적 사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리고, 수선업자의 리폼 행위를 명품 가방 브랜드에 대한 상표권 침해행위로 인정하였다.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면서도,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리폼 행위로 원래 상품과의 동일성을 상실하는 정도의 변형이 발생하였을 경우 상표권 소진 이론이 적용될 수 없다거나, 리폼 제품 역시 그 자체로 교환가치를 가지므로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할 수 있고, 상표가 표시되어 있는 원래 제품의 원단을 사용하였으므로 리폼 제품에도 필연적으로 상표가 표시되니 상표법 규정의 문언상 상표적 사용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법리적으로는 잘못된 부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의아한 부분은, 과연 이 사건 리폼 행위로 인하여 상표권자인 명품 브랜드의 상표에 관하여 출처의 오인·혼동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위 사건의 수선업자는 상표권자로부터 가방을 구매한 소비자로부터 요청을 받아 리폼을 하고, 그 소비자에게 돌려주었다. 따라서 리폼을 의뢰한 소비자가 돌려받은 리폼 제품을 상표권자인 명품 브랜드에서 제작한 것으로 오인·혼동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물론 법원은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으나, 당장에 오인·혼동 가능성이 없더라도 추후 리폼 제품을 양수하거나 이를 본 제3자가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아직 리폼 제품을 제3자에게 양도하는 등의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그럴 가능성에만 근거하여 미리부터 상표권 침해로 의율할 필요까지 있는지 의문이다. 나중에 진짜로 리폼 제품을 제3자에게 양도할 때 상표권 침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법원의 논리에 따르면, 손기술이 좋은 사람이 리폼업체를 통하지 않고 자신이 구매하였던 자기 소유의 명품 가방을 스스로 리폼해서 자신이 사용하는 경우에도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경우에도 나중에 자신이 스스로 리폼한 가방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고, 들고 다니는 리폼 가방을 제3자가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돈주고 산 가방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것인데, 너무 과도하게 상표권자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지. 이 사안과 다른 예를 들자면, 나이키 신발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색이나 무늬를 페인팅하여 스스로 신고 다니는 것도 나이키에 대한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상표권 침해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손해의 발생은 청구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하고, 실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 없다면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할 수 없는데, 이 사건에서 수선업자의 개별적 의뢰를 받아 리폼을 해준 행위로 상표권자인 명품 브랜드에 어떠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법원은 명품 브랜드와 수선업자가 「동종 영업」을 하고 있으므로 명품 브랜드의 영업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추정된다는 대법원 판례와 상표법 제110조 제6항에 따라 「변론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기초」하여 상당한 손해액으로 1,500만 원을 인정하였는데, 손해액 산정에 고려한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수선업자의 리폼에 따른 매출액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결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수선업자의 침해로 의율된 영업행위는 가방 등의 리폼 행위이지 판매행위가 아닌데, 명품 브랜드에서 자신들의 가방을 구매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 자신들의 잠재적인 리폼 서비스 고객을 수선업자가 가로챔으로서 명품 브랜드의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사정이 없다면 명품 브랜드 측은 이미 가방을 판매하면서 소비자로부터 가방에 대한 대가를 모두 받았기 때문에, 이후 가방을 구입한 사람들의 개별적 의뢰를 통한 수선업자의 리폼 행위에 따른 대가를 상표권자인 명품 브랜드의 손해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다 싶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 계속 중이고, 경우에 따라 대법원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보인다. 항소심 및 대법원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매우 관심이 가지만, 결론이 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당분간 상표가 표시된 제품의 리폼에 있어서는 주의를 기울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안태규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기고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