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차세대 HBM' 장비 내재화 좋은데…中 역풍 정말 괜찮나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챗GPT가 촉발시킨 AI(인공지능) 시대.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AI기술 수준은 주문에 따라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편집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론 모든 디바이스에 AI가 탑재,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냉장고가 식료품의 유통기한이나 변질 여부를 파악, 사용자에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자주 쓰는 비품이 떨어지면 냉장고가 직접 최저가로 주문해 줄 수 있다. 또 항공권을 예매할 경우, AI 비서에게 몇 가지 조건을 말하면 대신해서 구매해 주는 등 일상 곳곳에 AI가 스며든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역시 반도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도체가 모든 전자 장치의 핵심적인 부품으로서, 데이터 처리와 전기 신호의 변환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AI 기술에는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HBM(고대역폭메모리)이 필수적이다.
챗GPT 등장부터 이미 HBM 수요는 폭증하고 있는데 앞으로 적용 영역이 늘어날 경우, 수요는 더욱 폭발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 업체 간에 HBM 패권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현재 메모리 업체들은 5세대 'HBM3E'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만드는 엔비디아 등 핵심 고객사에 납품을 추진 중인데, 업계 최초로 HBM3E 12단 적층에 성공한 삼성전자는 단독 공급을 추진 중이며, SK하이닉스 역시 12단 HBM3E 메모리 샘플을 보내 검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업체 간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다음 세대인 HBM4 준비도 한창이다. 오는 2026년 상용화 예정인 HBM4의 규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유력시되는 규격은 720마이크로미터(μm) 수준으로 전해진다. HBM4를 이 규격에 맞춰 생산하려면, HBM3E 등에 적용 중인 TC-NCF, MR-MUF 공정으론 불가능하다. 이에 메모리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등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메모리 업체들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이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를 내재화하려는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측은 이 같은 움직임에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매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내재화는 분명 여러 장점이 있다. 기술 확보 및 경쟁력 강화를 비롯해 수익성 개선 등에서도 이점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6세대 공정부터 국내 핵심 고객사를 잃을 위기에 놓여 있는 주요 협력사들이 어디로 눈을 돌릴 지다. 생존을 위해선 미국의 마이크론 뿐 아니라 중국 기업까지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목되는 점은 이들 기업은 수십 년간 삼성, SK 등과 협력해 오며 높은 기술 수준을 유지해 오던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중국 기업들과 협력을 하게 될 경우, 결국 그 화살은 한국 기업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를 취재하며, 만난 다수의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결코 무시해선 안된다'라는 것이다. 세계 3대 반도체 학회 중 하나인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업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제출 할 정도로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특히 중국은 과거 반도체 회로 관련 연구 실적이 낮았던 것에 반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다양한 연구 실적을 도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굴지의 협력 기업들이 중국기업과 손을 잡을 경우 시장 확대라는 효과도 있겠지만 기술 유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HBM 준비에 신중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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