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뷰] '기생수: 더 그레이', 日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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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더 그레이)'는 일본 만화 '기생수'를 기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기생식물이 인간의 뇌를 지배해 숙주로 삼는다'는 원작의 기본 설정만 가져왔을 뿐 스토리는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만화 기생수 작가인 이와아키 히토시도 기생수: 더 그레이에 대해 "원작을 굉장히 존중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발상과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엿보였으며 저는 원작자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관객으로서 즐겁게 봤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사화 리메이크 허용에 대해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원작자의 극찬을 이끌어 낸 기생수: 더 그레이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팔 아닌 머리로, '공존'과 '분리' 사이
만화에서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는 자신의 팔을 끈으로 묶어 기생생물이 뇌까지 침투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는다. 이를 통해 팔을 잠식한 기생수 '미기(오른쪽이)'와 숙주 신이치는 한 몸에 공존한 채 수시로 교감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다.
더 그레이에서는 '수인(전소니 분)'이 괴한에게 기습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기생생물이 몸 속에 침투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생생물 '하이디'는 숙주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뇌를 차지하려던 것을 멈추고 수인을 살리는 데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런 이유에서 하이디는 수인의 뇌를 반만 지배할 수 있는 형태로 남게 되며, 머리 일부분을 변형시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형태로 변이된다.
이 부분에서 원작과 더 그레이의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원작은 기생생물이 팔을 잠식한 채 주인공과 교감하며 서로 성장하는 스토리이지만, 더 그레이의 경우 기생생물이 뇌를 반만 잠식했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수인이 위급한 상황에 본 모습을 드러내며 몸을 나눠쓰는 사이가 된다.
기생생물의 의식이 깨어있을 땐 수인의 인격이 잠드는 형태인 만큼 서로가 직접 만나지 못하며 존재를 인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설정이 추가됐다. 원작이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더 그레이는 기생생물 조직과 인간의 대립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한 모습이다.
기생생물의 숙주 잠식 위치가 다른 만큼, 전투 능력도 차이를 보인다. 신이치와 미기는 서로의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합을 맞추며 팔을 변형해 적과 맞서지만, 하이디는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머리 일부분을 변이시켜 전투에 임한다. 수인과 하이디는 인격에 따라 목소리와 얼굴이 바뀌기 때문에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 인격으로 비춰지는 데, 극 중 기생생물의 이름인 '하이디'도 하이드에서 따온다는 설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더 그레이에서는 '강우(구교환 분)'가 원작 성장 서사와 다른 관계성을 보완한다. 강우는 기생생물 때문에 가족들을 잃고 누나마저 잠식당한 형태로 조우하며 누구보다도 큰 고통을 겪지만, 우연치 않게 수인과 하이디를 목격하는 바람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 인물이다. 하이디의 인격과 수인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던 강우는 그들과 우정을 나누며 지역 시장의 뇌를 노리는 기생수 집단과 맞서 싸우게 된다.
이처럼 신이치와 수인은 성별, 기생생물의 잠식 위치, 소통 방식 모두 다르게 설정됐지만 '외유내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인은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으로 학대당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직접 경찰에 신고하는가 하면, 마트에서 행패를 부리는 손님에게 굴복하지 않고 본인만의 강단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인물이다.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은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강한 의지를 통해 성장하는 원작 주인공 신이치와 닮아 있다.
◆믿음과 배신…'조직'의 중요성
원작과 다른 서사로 전개되는 만큼 더 그레이가 주는 메시지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기생생물의 변종이 되지만 인간을 탐하는 무리와 맞서 싸우며 성장하는 원작과 달리 더 그레이는 '조직'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생존을 위해 인간의 뇌를 지배했던 원작의 기생생물과 달리 더 그레이에서는 '동족'을 찾아 집단을 이루려는 기생생물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기생생물들이 동족을 찾고, 무리를 지어 함께 생활하려는 것 역시 보다 긴 생존을 위함이다.
군대 외에 이렇다 할 저항 세력이 없었던 원작과 달리 더 그레이에서는 경찰 내 특수 전담반을 꾸려 이들과 맞서는 조직을 전면에 내세웠다. 동족을 찾아 무리를 이루는 기생생물처럼 인간도 더 그레이팀과 남일경찰서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기생수 특수 전담반인 더 그레이팀의 팀장 '준경(이정현 분)'은 남편을 기생생물에게 뺏긴 후 오로지 복수심에서 해당 개체를 박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는데, 그는 철저히 '인간'과 '괴물'로 조직을 구분한다.
여기서 들여다볼 점은 각각의 조직마다 신뢰와 배신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기생생물 조직의 우두머리급이었던 목사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족마저 무참히 죽이며 다른 기생생물의 분노를 산다. 인간 조직에서도 기생생물을 돕는 부역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평생 믿고 지낸 형·동생에게 배신당한 강우도 조직의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이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간접적으로 비유한다. 각기 다른 존재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벌어지는 현상을 기생생물 조직, 망나니파, 더 그레이팀, 남일경찰서 등 조직화된 집단에 투영함으로써 현실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느낌이다. 조직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구성원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갖는 지를 장면 곳곳에 배치했다.
더 그레이는 '좋든 싫든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하이디의 메시지와 강우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조직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작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를 등장시켜 오른손을 클로즈업한 것도 어쩌면 한국과 일본이 공조하는 새 조직의 등장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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