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배터리 '동박' 울고 있다…美 수혜 여부 오리무중 [소부장박대리]

고성현 기자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배터리용 음극판 소재인 동박을 제조하는 국내 기업들이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저가 공세에 이어 전기차 시장 둔화까지 겹치면서 회복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하반기부터는 고객사 다각화 등 성과로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지만, 다른 배터리 소재 대비 중국발 공세에 취약하다는 점이 숙제로 남았다.

SKC 동박사업 투자사인 SK넥실리스는 올해 1분기 매출 916억원, 영업손실 399억원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9%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적자전환했다. 전분기 대비로는 매출이 3.9% 늘었으나 영업손실은 지속했다.

경쟁사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비교적 실적이 개선됐으나 불황에 따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1분기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2336억원, 영업이익 45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7% 상승했으나 영업이익은 26.8%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6% 가량 감소한 118억원으로 추락한 이후, 1분기까지도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초 동박은 국내 업체가 시장을 과점할 수 있는 고성장 소재 사업으로 꼽혔다. 얇으면서도 균일해야 하는 등 제조 진입장벽이 높아,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국내 기업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업체들이 저품질용 동박 생산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시장 내 공급 과잉이 일어났고,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 밀리게 돼 수익성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전기차 수요 둔화도 실적 부진에 한몫했다. 배터리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동박 수요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게다가 중·저가형 제품이 늘어난 점도 하이엔드 동박 제품 중심인 국내 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습이다.

업계는 작년부터 이어진 동박 수요 부진이 하반기부터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신차 출시가 예정돼 업황이 반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고연신·고내열성 등 높은 품질의 동박이 요구되는 4680 원통형 배터리 양산을 앞둔 것도 기대 요소 중 하나다.

이와 달리 하반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는 시선도 있다. 전기차 업체들이 여전히 중·저가형 모델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데다, 중국의 저가 동박 공급 판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국내 배터리 기업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미국 시장에서의 전망이 다소 불투명하다. 미국 시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해외우려기업(FEOC) 규제가 있어 중국 업체가 진입하기 어렵다. 특히 활물질 등 은 핵심광물, 분리막 등은 배터리 부품으로 포함되면서 시장 선점 기회를 높였다. 반면 동박은 FEOC 규제 품목으로 지정되지 않아 확실한 진입장벽을 구축하지 못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된 IRA 최종 가이던스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정부가 이번 가이던스에서 도입한 개념인 '배터리 자재(Battery Materials)'가 FEOC 규제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탓이다. FEOC 규제를 받지 않는 것으로 확정된다면 중국 업체들의 미국 시장 접근성이 높아지고, 지난해와 유사한 구도가 나올 우려가 있다. 현재 배터리 자재에 포함된 소재로는 동박, 분리막 원단(코팅 분리막 제외), 전해질 용매 등이 있다.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동박 업체들이 자체적인 수율 향상과 전기료가 싼 해외 진출 등을 추진하고 있어 장기적인 원가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라면서 "미국 시장도 현지 대응 능력에 따라 수요가 확대될 여지가 있고, 중국 동박 업체를 향한 추가 규제가 있을지도 아직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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