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선두 굳히는 SK하이닉스, 뒤쫓는 삼성…차세대 HBM 경쟁전 심화 [소부장반차장]

고성현 기자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이천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일 이천 본사에서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고대역폭메모리(HBM)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SK하이닉스가 시장 입지 다지기에 나섰다. 4세대 제품인 HBM3 생산을 확대하고 차세대 제품의 조기 양산에 돌입하는 방식을 택하면서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향 납품을 추진하는 삼성전자와의 선두 경쟁 구도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HBM3 생산에 대한 추가 물량 요청에 따른 대응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시장 투자 규모가 예상 대비 커지면서 관련 AI GPU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올해 5세대 제품인 HBM3E 생산 확대를 위해 HBM3 라인 전환을 추진해왔다.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하는 삼성전자·마이크론의 시도가 가시화된 만큼, HBM3E를 적기 양산해 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다 이번 물량 추가 공급 요청이 들어오게 되면서 기존 HBM3 물량을 줄이지 않고 대응하는 방안을 고려하게 됐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넘치는 수요 속 물리적 생산 공간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기존 후공정 효율 강화 또는 공동개발라인 생산 전환 등으로 일부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이와 더불어 차세대 제품 양산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2027년이었던 7세대 제품 HBM4E 개발을 2026년까지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김귀욱 SK하이닉스 HBM선행기술팀장은 지난 13일 열린 '국제메모리워크숍 2024(IMW 2024)'에서 "HBM은 1세대 개발 이후 2년 단위로 제품이 개발됐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HBM3E 이후 개발 주기가 1년 단위로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HBM4E는 개발 초기 단계로 상세 스펙 등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10나노미터(㎚)급 6세대(1c) D램이 코어다이에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양산 준비 중인 HBM3E에는 10나노급 5세대(1b) D램이 탑재된다. 구체적인 단수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20단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HBM4E에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HBM3E까지 어드밴스드 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MR-MUF) 기술을 적용해왔지만, 20단 적층 이후부터는 얇아지는 칩 두께와 열 방출 특성 문제가 심화되는 탓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이 범프 없이 구리 간 접합으로 칩 두께·간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만큼, HBM4(6세대) 20단 제품 이후부터 본격적인 채용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HBM4E 시기를 앞당긴 것이 삼성전자·마이크론과의 차세대 제품 경쟁에서도 승기를 잡겠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어드밴스드 MR-MUF가 적용되는 제품까지는 상대적 우위를 가져갈 수도 있지만, 하이브리드 공정부터는 구도가 재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 시기를 앞당겨 신 공정에 선제 진입한다면 상대적 우세를 다시 한번 가져갈 수 있게 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본딩 적용이 어려운 HBM4까지는 인프라를 확실히 구축한 SK하이닉스가 비교적 우위에 있을 수 있으나, 하이브리드 본딩부터는 범프가 없어 완전히 다른 양상"이라며 "따라서 비전도성접착필름(TC-NCF)이냐, MR-MUF냐의 접합 소재 방식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술 경쟁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연합뉴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연합뉴스]

SK하이닉스의 개발 시기 단축 결정을 두고 경쟁자인 삼성전자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개발 전담팀을 꾸리고 HBM3E 12단 제품 납품 추진 등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6세대 제품인 HBM4도 내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사 경영진도 선두 리더십에 대한 경쟁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경영 현황 설명회에서 "AI 초기 시장에서는 우리가 승리하지 못했다"며 "2라운드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잘 집결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회사의 HBM은 올해 이미 솔드아웃인데, 내년 역시 거의 솔드아웃됐다"며 "현재 세계 최고 성능 HBM3E 12단 제품의 샘플은 5월에 제공하고, 3분기 양산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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