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SW 산업혁신]④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법, 중소·중견 반대 속 22대 국회로 가나
한국 공공 소프트웨어(SW) 산업이 위기다. 정부는 예산을 줄이고 기업은 적자 신세다. 그 사이 공공 시스템은 부실해지고 피해를 입는 건 국민이다. 지난해 11월 터진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와 공공서비스 먹통 사태가 단적인 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공공 사업 단가 후려치기, 과도한 과업 변경과 발주기관 갑질, 규제를 둘러싼 어긋난 이해관계 등 공공 SW 시장의 문제는 십 수년째 계속되는 해묵은 병폐들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공공 SW 생태계를 둘러싼 정책과 제도들을 살펴보고, SW 산업 진흥을 위한 바람직한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정부가 지난 십여년간 대기업에 문을 열지 않았던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장의 빗장을 풀기로 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대기업 진입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지만, 중소·중견SW 업계가 강력히 반대하는 데다 국회에서도 따라주지 않아 현재로선 명분도 실행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 SW 시장에 대한 대기업 참여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이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터진 이후였다. 당시 행정망 장애 원인으로 대기업 참여가 배제된 공공 SW 시장의 품질 저하가 원인으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국회는 재발방지 후속대책 일환으로 이를 추진했다.
그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윤두현 의원(국민의힘)이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의 공공SW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제48조 4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SW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이어 올해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윤두현 의원안은 참여 허용 금액을 과기정통부 장관 및 고시로 정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실제 과기정통부는 제도개선 방안에서 허용 하한선을 ‘700억원’으로 제시했다. 설계·기획 사업의 경우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전면 개방하고, 구축 사업은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침이 중소·중견SW 업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면서, 실제 법 개정까지는 적잖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최근까지 수차례 업계 간담회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중견SW기업협의회는 4가지 조건을 제시한 절충안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개정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4가지 조건은 ▲대기업 참여제한 기준 사업금액 하한 700억원을 응용·개발(구축)사업에만 한정할 것 ▲유지보수 등 통합발주시 사업금액 부풀리기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대기업참여제한 예외사유로 ‘신기술’ 분야를 제외할 것 ▲상생협력기준 완화대상 사업을 확대하고 중견기업 배려 조치를 취할 것 등이다.
과기정통부는 이에 대해 이미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중견 업계 입장만 더 반영해줄 경우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중견SW기업협의회 관계자는 “4개 조건은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핵심적인 문제로, 중견SW기업들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배수의진을 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 당장의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현 21대 국회 회기 내 개정안 통과를 바라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21대 막바지에 이른 지금, 네이버 ‘라인’ 매각 사태에 집중하고 있는 과방위가 이처럼 이해관계자가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급히 통과시켜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과방위 여야는 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2주 채 안 남은 지금에도 전체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라인’ 사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여야간 온도차로 빠른 해결이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다. 그마저 공공 SW 관련법은 인공지능(AI)기본법 등 다른 법안에 우선순위가 밀려 있다.
과방위 관계자는 “다음주 상임위 개최를 두고 여야 간사가 협의 중이나 어디까지나 라인 사태 해결이 우선”이라며 “공공 SW에 대기업 진출 허용 문제는 ‘대기업’이라는 키워드상 예민한 문제라 금방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대기업 계열 SW 업계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중견SW 업계는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국회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 업계 한 관계자는 “21대 국회 통과가 어렵더라도 22대 국회에서 논의를 계속 이어갈 텐데, 그때 최대한 우리 입장을 국회에 설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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