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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뷰] '더 에이트 쇼', 내가 '중간층'이라면?

채성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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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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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모이면 '서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평등한 것처럼 보이는 사이에서도 돈, 명예, 계급 등에 따라 그들만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는 이런 서열을 통한 상하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주최자의 의도도 모른 채 쇼에 참가하는 8명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을 통해 층 수를 부여받게 되고, 이는 곧 권력이 된다. 매 시간마다 분배되는 상금이 '피보나치 수열(처음 두 항을 1과 1로 한 후, 그 다음 항부터는 바로 앞의 두 개의 항을 더해 만드는 수열)'로 정해짐에 따라 플레이어들은 높은 층일 수록 돈을 많이 버는 구조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더 에이트 쇼는 공평한 줄 알았던 참가자들이 출발 선상부터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8층(천우희 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력으로 구성원들을 압박하며 상하 관계를 정립한다. 적당한 자본력과 폭력으로 조직을 지배하던 '6층(박해준 분)'은 8층에 기생하며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하고, 차상위층인 '7층(박정민 분)'의 경우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다만, 중간층인 '4층(이열음 분)'과 '5층(문정희 분)'은 자신의 능력과는 다른 계급으로 살게 된다. 상대적으로 5층은 4층보다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지배층에 속할 수 있었지만 1·2·3층과 같은 부류로 나눠져 한 순간에 노예 취급을 받는다. 반면 4층은 6층과 마찬가지로 8층에 기생하며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는다.

자본주의적으로 볼 때 1·2·3·4 VS 5·6·7·8층의 이분법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더 에이트 쇼에선 변수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권력에 기생해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립적인 위치에 있더라도 '선택'에 따라 피해를 보는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 에이트 쇼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중간층(4·5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선택에 따른 책임을 오롯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는다.

4층과 5층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는 비슷한 모양새로 마무리되지만, 중간 과정만을 보자면 삶의 질 부분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4층은 안위를 보장받은 대가로 치아를 잃게 되고 5층의 경우 정신·육체적 피해를 입지만 끝내 6층을 단죄하는 심판을 내린다. 어쩌면 더 에이트 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뉴욕 양키스 투수)의 말처럼 선택과 책임의 대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결과로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4·5층 위치에 변주를 준 건 아닐까.

채성오 기자
cs86@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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