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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네트워크 혁신 외쳤던 정부, 오픈랜 예산도 줄였다

강소현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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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혁신하기 위한 원천기술 확보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의 대대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 영향으로,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리면서다. 이에 오픈랜 등 미래 네트워크 기술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가 추진하는 ‘2024년 오픈랜(OpenRAN·개방형무선접속망) 실증단지 조성 실증과제’의 예산은 원안에서 기획재정부에 처음 제시됐던 금액보다 대폭 삭감됐다. 처음 제시한 금액은 60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이날 공고를 마감하는 이번 실증과제는 국내 기업의 개방형 오픈랜 장비·솔루션 개발 및 상용화 지원을 골자로, 내년 12월까지 2년간 진행된다.

◆ 'DIY 기지국' 가능해진다…글로벌 시장 선점 위한 실증 돌입

[ⓒ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오픈랜은 무선접속망(RAN)을 구축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통신장비 간 연결에 필요한 인터페이스(API) 등 소프트웨어 요소를 하나의 통일된 기준으로 규정,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를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현재 기지국은 무선신호처리부(RU·Radio Unit)와 분산장치(DU·Distributed Unit), 중앙장치(CU·entralized Unit) 등 네트워크 장비로 구성되는데, 지금까진 이 장비들이 모두 동일 회사 제품이어야만 상호 신호연결이 가능했다.

예컨대 화웨이의 RU와 DU는 서로 호환되지만, 화웨이의 RU와 삼성전자의 DU 간 상호 교신은 불가했다. 통신장비 간 연결에 필요한 앱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통신사는 운영의 용이성을 위해 일반적으로 1~2개사의 통신장비 만을 이용, 특정 통신장비에 종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이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형태로 변질될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오픈랜은 여기에 대응하고자 도입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실증과제는 국내 기업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레퍼런스를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됐다. 지금까지 실제 통신장비가 적용된 상용망에서 실증을 진행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이번 과제는 경기장·공연전시장·상업시설·교육기관·공항·철도역·공장과 같이 특정 공간에 밀집된 군중(또는 디바이스)을 대상으로, 실제 상용망 수준의 실증환경에서 이뤄진다.

익명을 요구한 장비업계 관계자는 “오픈랜은 이제 막 커지고 있는 시장으로, 상용화 사례를 가지고 신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단계"라며 "이동통신 기술에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정부가) 상용사례를 만들어줬을 때 국내기업이 (해당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R&D 예산 감소에 정책서 소외된 오픈랜…"레퍼런스 확보 위한 정부 지원 필요"

다만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과 관련해선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관, 대·중소기업 간 협력 구심점인 '오픈랜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ORIA)' 출범시키고, "오픈랜이 기술패권 경쟁을 선도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ORIA를 중심으로 협력과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각오와 달리, 오픈랜은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린 상황이다. 당장 이번 공모안내서에 적힌 과제별 정부 지원금액은 약 2억6000원으로, 처음 NIA가 정부에 제시한 규모를(60억원) 감안하면 대폭 줄었다. 업계는 이번 지원 규모 축소가 정부의 대대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에 따른 영향이라 보고 있다. 실증은 비(非)R&D에 해당되지만, 예산 분배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오픈랜 관련 인재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도 밀렸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에서 오픈랜 인재육성 프로젝트는 제외됐다.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글로벌 R&D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 중요성과 국가적 대표성, 신속 착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선점이 쉽진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수 년 전부터 정부 차원의 대대적 투자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이 화웨이 등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형태로 변질될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국가통신정보관리국(NITA)은 2022년 15억 달러(약 2조49억원) 규모의 ‘무선 공급망 혁신 기금’(Public Wireless Supply Chain Innovation Fund)을 조성하한 바 있다. 최근 첫 번째 지원 대상으로 미국 솔루션 기업인 비아비(VIAVI)를 택한 가운데, 비아비는 향후 3년간 NITA로부터 2170만 달러를 지원받는다.

NITA는 기금 조성 배경에 대해 “5G는 역동적이지만, 5G 장비 시장은 정적이다. 소수의 회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을 제기한다”라며 “공공 무선 공급망 혁신 펀드 조성을 통해 오픈랜을 진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학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서 (이번 실증사업은) 좋은 레퍼런스가 되겠다"라면서 "예산이 크게 줄다 보니까 축소된 형태로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랜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이 주로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지원이 간절하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이번 실증과제에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통신장비사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할 예정이다.

강소현 기자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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