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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밸류業 금융③] "은행장이 옷벗어야할 일 아닌가"… 도넘은 '내부통제' 부실, 눈감은 책임경영

박기록 기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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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올해 금융권은 ‘밸류업(Value Up)’ 프로그램을 크게 강화하고있다. ‘주주 환원율’을 높이고 저평가된 시장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주가)를 높이는 것만으로 밸류업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홍콩 ELS사태’ 수습과정에서 보여지고 있는 난맥상, 계속되는 배임·횡령 등 내부통제 문제 등 적지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하다.

<디지털데일리>는 ‘2024년 밸류業 금융’ 기획 시리즈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짚어보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

- 올 상반기 우리·국민·농협은행 등 내부통제 사고 다수 드러났지만 은행장 등 경영진 징계없어… "기존 수단으론 한계" 지적

- 금융회사 경영진 책임 구체화, 7월 시행 '책무구조도' 도입 관심 고조… '상당한 주의' 판단 모호,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 "중대사고 책임있는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방침"… 가장 강력한 조치, 금융권 재조명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이 정도면 은행장을 비롯해 경영진이 옷을 벗어야할 중대 사고 아닌가"

지난 11일 우리은행에서 또 다시 내부 직원에 의한 100억 원대의 횡령 사고가 발생하자 관련 기사에 달린 여러 댓글중 하나다.

대리급에 불과한 은행 직원이 저지른 간 큰 범죄에 대한 놀라움 보단,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도 최고경영자가 책임지지않는 '책임 경영의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더 많았다.

해당 직원은 대출서류 등을 여러 차례 조작하는 수법으로 100억원 가량을 빼돌려 가상화폐 등에 투자한 것이 들통났고, 그나마도 60억원을 날려버렸기때문에 현재로선 원금 회수도 쉽지않아보인다.

우리은행은 불과 2년전에도 707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횡령 사고가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기업문화혁신 TF(회장 및 자회사CEO 협의체)’를 회장 직속으로 신설하고, 이 TF를 통해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강화’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또 같은해 7월 취임한 조병규 우리은행장도 강화된 내부통제시스템을 강조하면서, 장기근무자에 대한 인사관리 체계 강화, 위험직무에 대한 직무 분리 등 나름대로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노력들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금융 당국도 이제는 은행의 자율 대응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선, 금융감독원이 12일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한 만큼 기존 내부통제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미흡함이나 문제점이 추가로 발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내부통제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은행 뿐만 아니다.

올해 상반기만해도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 주요 대형 은행에서 갖가지 형태로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대규모 횡령사고로 시끄러웠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쏟게 만든 '홍콩H ELS 사태', 이것을 촉발시킨 '금융 불완전판매'도 내부통제의 부실에 그 원인이 있다.

참고로 지난 4월 국민은행이 공시한 '업무상 배임' 에 따르면, 대구 지점에서 2020년 8월 말부터 지난 3월8일까지 취급된 주택담보대출 등 총 111억3800만원의 가계대출에서 대출신청인의 소득이 과다 산정했다. 또 용인 지점에선 동탄의 한 상가 분양자 대상자들에게 272억원 담보대출을 제공할 때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산정한 것이다. 과도한 실적 경쟁이 부른 일탈이다.

농협은행도 지난달 22일 공시를 통해 53억원 규모의 공문서 위조 및 업무상 배임, 11억 규모의 업무상 배임 등 2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크고 작은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은행장 등 최고 경영진이 직접 제재를 받은 사례는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금융권을 크게 술렁이게 했던 장면이 있었다.

지난달 7일,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농협과 관련된 다수의 사건·사고로 농협의 공신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범 농협을 대상으로 한 '내부 통제 및 관리 강화' 방침을 밝혔고, 여기에 ‘중대사고와 관련해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등의 대책을 담았기 때문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5월초, 강 회장은 농협 '내부 통제 및 관리 강화' 방침을 통해 ‘중대사고와 관련해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방침을 밝혀 금융권을 술렁이게 했다. ⓒ농협중앙회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5월초, 강 회장은 농협 '내부 통제 및 관리 강화' 방침을 통해 ‘중대사고와 관련해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방침을 밝혀 금융권을 술렁이게 했다. ⓒ농협중앙회

이와관련 올해 임기 2년차인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불거졌다. 또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의 연임 가능성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내부통제 문제로 인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방식과 관련해, 이같은 최고책임자(대표이사)에 대한 연임 제한은 사실상 가장 강력한 '신분제제' 수단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에 대해 금융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대표이사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실효성 자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강 회장이 공언한 대로 농협중앙회가 향후 농협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에서 어떠한 결과를 낼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이것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질 경우 국내 금융권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융회사 경영진에 대한 신분제제 '책무구조도', 7월부터 시행 '책임경영' 밸류업 견인할 수 있을까

그런점에서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오는 7월3일부터 은행 및 금융지주사를 우선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가는 '책무구조도' 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앞서 수년전부터 심각한 내부통제 관련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경고', '임직원 문책'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침으로써 규제의 수단 역시 실효성있는 결과를 못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에 포함돼야 할 책무는 금융관계법령 등에 따라 금융회사 또는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등의 집행 운영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특정 책임자를 지정해 수행하게 하는 업무와 관련된 책무, 금융회사가 인허가 등을 받은 업무와 관련된 책무, 인허가 등을 받은 업무의 영위를 위해 수행하는 경영관리 관련 책무 등 책무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규정했다. 이를 소홀이 할 경우 금융회사 경영진에 대한 문책 등 보다 강화된 '신분제재'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다만 책무구조도가 시행에 들어가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않다.

금융감독원은 '책무구조도'의 효과에 대해 "내부통제 관리의무라는 본인의 업무를 소홀히 한 고유의 자기책임이라는 점에서 기존 내부통제 제재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결과책임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하여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임원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고 부연하고 있다.

문제는 '상당한 주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여전히 모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아무리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한다해도 해당 경영진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책무구조도'가 시행에 들어가더라도 이처럼 고무줄 잣대가 된다면 결국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감원은 이에대해 "금융업권과 함께 상당한 주의 여부 판단을 위한 업무영역별 모범사례를 전파하는 등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제재와 관련해 소통을 지속함으로써, 내부통제 책임 여부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제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금융회사의 '책임경영' 확립은 '밸류업'을 위한 핵심 가치다.

이번 우리은행의 사례 처럼, 고객돈을 마치 제 돈인양 서류를 위조해서 탕진하는 횡령 등 내부통제 사고는 수십년간 어렵게 쌓아놓은 은행의 이미지는 일거에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밸류업의 방해 요소'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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