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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친환경 제철의 첫발, 전기 용융로 가동…포스코 포항제철소 가보니

포항=고성현 기자
포스코가 공개한 ESF 파일럿 설비 외관 [ⓒ포스코홀딩스]
포스코가 공개한 ESF 파일럿 설비 외관 [ⓒ포스코홀딩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가루로 된 철광석이 4개의 유동환원로 속을 지나면서 고체 상태의 환원철이 된다. 나온 환원철은 환원제, 생석회 등 부원료와 섞여 전기융용로 안에 투입된 뒤 녹인 뒤 쇳물이 되고, 이 쇳물은 제강·주조·압연 과정을 거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으로 다시금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연료는 수소(H2)와 전기뿐으로, 화학반응한 원료는 탄소가 아닌 수소, 산소와 결합한 물의 형태로 배출된다. 이것이 포스코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친환경 제철 공법 '수소환원제철(HyREX)'의 과정이다.

이달 24일 찾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HyREX 개발을 위한 시험 설비 점검이 한창이었다. 수소로 환원한 직접환원철(DRI)을 녹이는 전기용융로(ESF)가 성공적으로 첫 쇳물을 뿜어냈고, 현장 관계자들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동차용 강판 등 고순도 철을 생산하기 위한 과정에 돌입했다. 이날 공개된 ESF 파일럿 설비는 지난 4월 첫 출선에 성공했으며, 이날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포스코가 공개한 ESF 선출 과정에서는 커다란 ESF 선철 출구 사이로 뻘겋게 달아오른 쇳물이 콸콸 뿜어져나오는 게 보였다. 아래로 떨어진 쇳물은 통에 담기고, 어느정도 채워지면 머드 건(Mud gun) 장비가 움직이며 다시 용융로 입구를 막는다. 용융로 내부에 다시 쇳물이 쌓이기 시작하면 다시 출구를 뚫고 쇳물을 뿜어내며, 통이 가득 차면 다시금 입구를 막기를 반복했다. 현장 관계자는 "ESF 파일럿 설비는 시간당 1톤 가량의 쇳물을 내뿜으며, 상용화 설비로 제작될 경우 시간당 36톤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장 작업자들이 전기용융로(ESF)에서 쇳물을 뽑아내기 위해 구멍을 뚫고 있는 모습 [ⓒ포스코홀딩스]
현장 작업자들이 전기용융로(ESF)에서 쇳물을 뽑아내기 위해 구멍을 뚫고 있는 모습 [ⓒ포스코홀딩스]

기존의 조강 과정은 원료를 석탄이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하기 적합한 형태로 가공해 고로에 넣고, 불어 넣어진 뜨거운 공기가 석탄을 연소해 일산화탄소 가스를 발생시켜 진행한다. 이때 일산화탄소 가스가 철광석의 산소를 떼어내며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면서 대기오염 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철강 산업은 대표적인 고탄소 배출 산업으로 지목받아왔고, 자연스레 탄소중립 등을 요구하는 환경규제의 목소리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포스코가 개발하는 HyREX는 연료로 수소를 사용하고 용융로를 전기로 대체해 저탄소 철강 생산이 가능하다. 철광석(Fe2O3)에서 산소(O2)를 떼어내는 환원반응을 통해 고순도의 쇳물로 변하는데, 이를 위해 석탄·천연가스 대신 수소를 사용해 산소를 떼어냈다.

HyREX 공정의 핵심은 기존 고로가 담당했던 환원·용융반응을 환원로와 전기로라는 두 가지 설비로 분리한 것이다. 환원로에서는 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된 수소와 접촉시켜 고체의 철을 제조한다. 이 방식으로 제조된 철을 직접환원철(DRI)이라고 한다. 이후 DRI를 전기로에 넣어 녹이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고순도의 쇳물이 된다. 이때 가열된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 물(H2O)로 배출돼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전기로의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경우 탄소 발생 요인을 더욱 줄일 수 있다.

파이넥스 3공장 전경 [ⓒ포스코홀딩스]
파이넥스 3공장 전경 [ⓒ포스코홀딩스]

포스코가 발빠르게 HyREX 상용화를 준비할 수 있는 배경에는 2007년 대량 생산에 투입된 파이넥스(FINEX) 기술이 기반이 된 덕이다.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 철광석을 알갱이로 뭉치는 등 예비처리 없이 곧바로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값비싼 고품위 펠렛을 사용하는 대신 분철 광석으로도 조강이 가능해 원가경쟁력이 높은 기술로 꼽힌다. 포스코는 이때 유동환원로를 사용해왔는데, 환원제로 일산화탄소 75%와 수소 25%를 사용해온 바 있다. 이미 수소를 환원제로 활용해 온 경험이 있어 타 경쟁사 대비 높은 이점을 갖춘 것이다.

기존 전기 아크로(EAF) 대안으로 다양한 품위 원료를 다룰 수 있는 ESF와 관련된 경쟁력도 갖췄다. 그룹사인 SNNC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합금철 ESF를 운영하면서 관련 노하우를 확보한 덕이다.

이러한 경쟁력을 입증받아 수소환원제철을 조기 안착시키는 데 필수적인 철광석 최적화 기술개발 프로젝트가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표 과학기술 프로젝트로도 선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자문회 산하 글로벌R&D특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한국형 수소환원제철용 철광석 최적화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글로벌 연구개발(R&D)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선정한 바 있다.

현장 관계자는 "포스코는 현재 HyREX 개발팀을 파이넥스, ESF에 대한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와 스마트팩토리 구현을 위한 포스코DX·포스코이엔씨 인력으로 꾸렸다"며 "수소 개발센터 내 기술 내재화와 설계 검토도 이뤄져 있다. 2027년까지 인력을 늘리면서 관련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30만톤 규모 HyREX 시험설비를 도입하고 오는 2030년까지 HyREX 상용화 기술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통해 늘어나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저탄소 철강을 내놓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2월 광양에 연산 250만톤 규모 전기로 공장을 착공했다. 약 6000억원이 투자된 대형 전기로는 2026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포항=고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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