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로마법 따르라지만…넷플릭스, ‘한국’서만 중도해지 정책 운용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최근 일부 보도와 달리, 한국에서만 중도해지 정책을 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해지 정책은 당장 이용자 편익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때문에 미디어 업계에선 OTT의 특수성을 감안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 큰 비용을 수반하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켜 결국 미디어 시장 전반에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와의 협의에 따라 서비스 중인 전 세계 190개국 가운데 한국에서만 중도해지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앞서 일부 매체는 한국소비자원과 민병덕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OTT 사업자의 약관 등 서비스 실태 조사 결과를 인용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만 결제일로부터 7일이 지나면 중도 해지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오히려 한국에서만 중도해지 정책을 운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2021년 공정위와의 협의를 통해 중도해지 및 전액 환불 청구가 가능하도록 이용약관을 자진 시정한 바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결제 후 7일 동안 시청 기록이 없을 경우 회원들이 중도 해지 및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상세한 정보를 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현재 넷플릭스코리아의 서비스약관을 살펴보면, 구독자가 원할 시 결제일로부터 7일 이내에 이용 내역이 없다면 중도해지 및 해당 결제 주기에 청구된 이용 요금 전액을 환불해주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자칫 소비자 편익을 챙기려다, OTT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국내 OTT의 경우 최근 사용한 날짜만큼 공제하고 나머지 차액을 환불할 수 있도록 약관을 자진 시정했다. 앞서 공정위가 소비자의 구독 중도해지권 방해·제한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한 데 따른 것이다.
업계에선 빈지뷰잉(Binge viewing·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TV프로그램 전편을 몰아 시청하는 방식)하고 서비스를 바로 해지할 수 있는 OTT 특성상 중도해지가 활성화될 경우 투자금 회수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호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오리지널 콘텐츠 하나를 제작하는 데에는 최대 수백억원이 투입된다. 월 구독료에 의존하는 OTT의 현 수익모델을 고려한다면 웨이브·티빙 등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가 수백만명 이상인 상위 OTT만이 겨우 한개의 콘텐츠를 매월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콘텐츠 수급비용도 별개다. 업계에 따르면 콘텐츠 수급 단가는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가까스로 콘텐츠를 확보한다 해도 투자비를 회수할 때까지 구독자를 잡아둘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결국 가입자를 락인(Lock-in·잠금)시키려면 콘텐츠를 계속 제작해야 하고, 또 돈이 들어간다. 만들어진 콘텐츠가 성공할 것이라 보장할 수도 없다.
지난 9월 김병기 의원실 주최로 열린 ‘OTT 시장과 소비자권익증진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도 OTT를 같은 구독서비스 모델인 헬스장과 비교하며, OTT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헬스장은 3일만 운동하고 구독해지 할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만, OTT는 보고 싶은 콘텐츠만 몰아보고 해지해 버리는 ‘체리피커’가 있을 수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관계자는 “소비자가 해지하고 해당 월의 잔여기간에 대해 반드시 환불해주게 되면 월 초기에 집중적으로 콘텐츠를 이용한 후 해지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사업자는 저렴한 수준의 월 구독료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텐데 이로인한 가격인상 압박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OTT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국내 1위 OTT 사업자인 티빙의 경우, 2022년 1192억원, 2023년 142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고, 같은기간 웨이브 역시 각각 1217억원, 80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이 구독 서비스를 월 단위로 이용하고 있다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월정액 OTT에 일할 환불을 강요하긴 어렵다"라며 “수백억을 투자해 콘텐츠를 만드는 플랫폼/콘텐츠 업계 투자가 위축되면, 결국 소비자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혜택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혜택을 저해하지 않도록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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