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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방통위 휴대폰 AS 지침, 규제만능 '탁상행정'

윤상호 기자
- 방통위, 애플 AS 문제 전체 규제로 해결…원칙대로 제조사 책임 물어야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휴대폰 AS를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안내 및 접수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단말기 AS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4일 시행에 들어갔다. 통신사가 직접 수리를 제외한 나머지 AS 전과정을 담당토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해 업계와 사용자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상 이 문제는 애플의 AS 정책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시행됐는데 오히려 애플식 AS 정책을 권장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외국계 기업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자 만만한 국내 통신사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통신사, 울며 겨자먹기…제조사, AS 경쟁력 갖출 필요 없어져=통신사들은 표면적으로는 준수 의사를 표명했지만 내심 불만을 토로했다. 통신사는 제조사를 대신해 단말기를 유통하는 것에 불과한데 과도한 책임이 부과됐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전문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통신사 대리점에서는 AS 규정 안내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오히려 사용자와 분쟁의 소지만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다른 유통업체와 형평성도 문제다. 방통위 논리대로라면 완제품을 유통하는 모든 업체가 AS를 책임져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할인마트에서 판매되는 전자제품 AS를 할인마트가 담당하는 것과 같다. 또 방통위가 결정한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 자체적으로는 처벌 규정은 없지만 통신산업의 특징상 다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부담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용자의 편의를 개선한다는 뜻은 좋지만 업계 현실을 전혀 반영치 않은 정책”이라며 “결국 통신사, 사용자, 제조사 모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사용자, 전문 AS 기회 박탈 우려=사용자의 불편도 우려된다.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곳은 통신사 대리점이다. 현재 국내 휴대폰 유통은 대리점과 판매점 두 단계로 이뤄지고 있다. 사실상 내가 제품을 구매한 곳과 서비스를 의뢰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 대리점인지 판매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또 AS 전문기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S 범위와 비용 등을 협의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수리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임대폰도 제조사가 다를 수 있어 기존 사용자 정보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제조사도 볼멘소리다. AS를 제대로 하지 않는 회사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통신사를 AS 채널로 이용하게 되면 자체적인 투자를 줄이는 것이 비용절감에 유리하다. 1차 고객 접점을 통신사로 넘기고 수리만 전담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업체도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AS 자체가 이미 하나의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결정이라는 평가다.

제조사 관계자는 “이럴 경우 구태여 비용이 많이 드는 AS센터 전국망 구축을 할 필요가 없다”라며 “이통사 대리점 직원은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잘못된 초기 대응이 결국 제조사에게 해가 될 우려가 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방통위, 이행 여부 11월부터 실태조사=결국 이번 방통위의 AS 가이드라인은 최근 통신업계를 통제하기 위해 주요 정책 수단으로 가이드라인을 남용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사용자가 단말기 AS에 불만을 느낀다면 제조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하는데 이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통위 관계자는 “11월과 12월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가이드라인에 처벌 규정은 없지만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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