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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e스포츠 저작권 논란에 즈음해

이대호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블리자드와 곰TV가 저작권 합의 없이 진행된 e스포츠 방송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28일 MBC게임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양사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지적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미디어에 전달했다.

결국 곪아온 종기가 터진 것이다. 블리자드와 국내 e스포츠 단체는 3년을 넘게 저작권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답답해진 e스포츠협회는 지난 5월 12개 게임단과의 공동대응을 통해 그간 블리자드가 과도한 저작권을 요구해 빚어진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협회는 12개 e스포츠 프로게임단과 함께 “e스포츠 발전의 최대 수혜자인 블리자드가 별다른 지원이 없다가, 이제 와서 상식을 벗어난 요구를 하는 것이 협상파행의 원인”이라고 성토했다.

여기에 e스포츠팬들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문제의 발단을 e스포츠협회로 봤기 때문이다. 2007년 e스포츠협회는 중계권사업자를 선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3년간 17억원의 중계권료를 지급받은 바 있다. 협회가 중계권료를 방송사 등에 재투자해 e스포츠 저변확대에 힘쓴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블리자드의 심기를 건드렸다. 블리자드가 보기엔 협회가 봉이 김선달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양측의 저작권 논란이 국회까지 번졌다. 블리자드와의 저작권 분쟁이 스타크래프트에 매몰되다시피 한 현재 e스포츠시장의 근간을 뒤흔들 중요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도 주목한 것이다.

지난달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 역시 두 논리가 첨예하게 대치했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방송 중계권과 더불어 2차 저작물에서 선수의 실연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에 논의가 진행됐다. 학계는 프로게이머의 저작권을 일부라도 인정해줘야 한다는데 무게를 뒀고, 블리자드 법률대리인은 선수 플레이는 예능적 행위가 아닌 실연권을 인정할 수 없는 플레이라고 맞대응했다.

지난달 30일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국제e스포츠심포지엄’에서도 e스포츠 저작권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국제적 문제로 비화됐다. 해외에서 온 e스포츠 관계자는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데, 플레이어가 액터(Actor)라고 봐도 되지 않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행사에 참여한 정경석 변호사는 “프로게이머는 저작권법상 지위가 없다”며 2차 저작물에 대한 실연권을 개발사에 한정했다. 저작권법상 실연자는 예능적인 표현을 해야 하는데, 프로게이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 정 변호사는 e스포츠와 전통적 스포츠의 구별을 주문했다. 게임 자체가 저작물이기 때문에 저작권자가 불분명한 야구와 축구 같은 스포츠와는 별개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심포지엄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원저작권자인 블리자드의 손을 드는 분위기였다. 지금의 e스포츠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을 진행한 김민규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저작권은 저작권자가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가 된다”며 저작권자를 우선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지금의 저작권 체계는 일방향인데, 게임은 쌍방향으로 다른 소비방식이 아닌가”라며 “(저작권 체계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할 문제”라고 개인적 견해도 밝혔다.

조슈아 라텐드레즈 국제e스포츠 연구원은 “아이튠 문서가 81페이지에 달하는 등 지재권법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며 “미국법이 젊은이들의 이의를 받고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지금의 e스포츠 저작권 문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태다. 달리 말하면 협회와 방송사 그리고 블리자드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협상주체 모두가 선임하는 변호사를 통해 협상을 타결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마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블리자드 폴 샘즈 최고운영책임자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블리즈컨2010’에서 “소송까지 가야겠다는 것은 100% 법적 확신이 있을 때만 말한다”며 강조한 바 있다. 소송에서 이기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공은 이제 법원에 넘겨졌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 이상, 관련 업계와 협상 주체들도 지금의 e스포츠에 과감히 메스를 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우선 저작권 논란 때문에 사회적 관심에서 비껴나 있었던 구단과 선수의 권리가 그렇다. 종목사와 협회가 판을 펼치면 나머지 몫은 구단과 선수가 담당한다.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데 여태껏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e스포츠에 쇄신을 가하는 것도 아픈 과거청산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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