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C언어도 안 가르치는 컴퓨터공학과, 말이 되나?”

심재석 기자
SW 산업의 핵심은 연구개발(R&D)이다.기술력이 SW 기업 경쟁력을 100%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국내 SW의 위상을 높이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기술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특히 SW 기술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설비투자 없이 인력으로만 승부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R&D 센터를 이끌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목소리, 애환을 10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국내 SW를 주도하는 핵심, R&D를 이끄는 사람들] ① 
투비소프트 연구소의 그룹장 5인방

‘국내 SW를 주도하는 핵심, R&D를 이끄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투비소프트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회사 측은 다섯 명의 그룹장을 소개했다.

 

투비소프트는 기업용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 솔루션을 개발하는 업체로, R&D 센터에는 약 46명의 연구원들이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그룹장 5인방’라 불릴 만한 이들은 투비소프트 R&D센터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40대의 개발자로, 한 연구그룹을 이끌면서 직접 개발을 하기도 하고 그룹원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사진 왼쪽부터) ▲이우철 엑스플랫폼 클라이언트 제품 설계 런타임 담당 그룹장 ▲조창훈 엑스플랫폼 웹 및 에이젝스 담당 그룹장
▲김시만 RIA 표준화 및 담당 그룹장 ▲이정훈 엑스플래폼 개발툴 담당 그룹장 ▲박재오 엑스 시리즈 개발 담당 그룹장이다.

이야기는 특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기자 : 최근 SW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업계 안팎으로 많이 들린다. SW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드는 R&D가 SW 산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SW R&D 업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큰 애로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이우철 : 인력문제가 제일 크다. 최근 개발자 채용을 위해 면접을 봤는데 겨우 4년 경력의 지원자가 회사를 4번이나 옮겼더라. 2번은 회사가 망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뒀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꿈을 안고 시작해야 하는 개발자가 월급 걱정부터 하게 된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하기 보다 회사가 안정적인지 아닌지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R&D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박재오 :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 평가 기준이 일당제였다. 이번에 없앤다고 하니까 지켜봐야 하겠지만,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궁극적으로 SW 산업 자체가 하급으로 치부되는 것이 문제다. 

기자 : SW업체를 취재하다보면 인력난을 걱정하는 회사가 많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왜 SW 업체들은 사람구하기가 어려울까.

조창훈 : 이력서를 내는 사람은 많지만 필요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DJ 때 IT인력 양성 한다고 해 놓고 웹 개발자만 늘려놓았다. 물론 웹 개발자도 필요하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핵심 엔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수준에 맞는 개발자가 부족하다. 

박재오 :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가 좋아서 공부했다. 지금 학생들은 좋아서가 아니라 취직하려고 IT를 한다. 그러니 뭘 공부해야 할 지 모르고, 학점만 따고 졸업한다. 요즘은 컴퓨터 공학과에서 C언어를 안 가르친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이정훈 : 나도 전산과 나왔는데, 솔직히 대학 졸업자들은 예전부터 수준 낮았다. 비전공자보다 조금 나을지는 몰라도 시스템 아키텍처를 이해하는 학생은 없다. 이런 건 현장에서 배워나가는 것이다.

박재오 : 물론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돈 많이 주는 대기업 간다. 하지만 대기업 가서는 SW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하청업체 관리한다. 중소기업에는 실력보다는 졸업장만 딴 사람들이 오게 된다.

이우철 : 똑똑한 애들이 대기업 들어가면 SW 기술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하청업체 개발자 쪼는 것만 배운다. 

김시만 : 대학생 수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가 처음 사회에 나올 때만 해도 C언어만 잘하면 됐는데, 지금은 표준도 알아야 하고 프레임워크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이를 다 배우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현업에서 쓸 수 없는 면이 있다.

기자 : SW 기업들이 다른 업종보다 월급을 많이 못 주니까 인재들이 SW 개발을 외면하는 것 아닐까?

김시만 : 사실 중소 SW기업은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어렵다. 최저가 입찰제가 가장 문제였다. 돈을 많이 못 버니 월급을 많이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정훈 : 대기업 SI업체와 일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현금 안 주고 장기간 어음으로 준다는 점이다. 제품 만들려고 빚 내서 연구해서 겨우 납품했는데 현금이 안 들어오면 유동성이 없어진다. 이 상황에서 다시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더 어렵다. 대기업들이 같이 일하는 회사와 상생하지 않아 IT가 3D가 됐고, 똑똑한 애들은 전부 전문직으로 가버렸다.

김시만 : 삼성전자도 SW 중요도 인식하면서, 중소기업 인력 싹 빨아들였다. 그렇다 보니 우리 회사도 연구개발 인력 부족해 졌고, 그룹장들이 올라가지 못하고 개발에 얽매여있다.

기자 : 그럼 월급을 많이 줄 수 있는 돈만 있으면, 좋은 인재를 육성하고, 글로벌 SW를 만들 수 있나? 

박재오 : 현 상황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미끼는 돈이지만, 돈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우철 : 개발자들은 돈뿐 아니라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좋아한다. 투비소프트 연구소에는 이직이 거의 없다. 한 친구는 6년 동안 어떤 회사에서 일했는데, 우리 회사에서 6개월 동안 배운 게 더 많았다고 한다. 개발자들은 프라이드가 강하다. 자신의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기자 : 그럼, 투비소프트 연구소는 개발자들에게 어떤 매리트를 주나.

이우철 : 우리는 자체 스크립트 엔진도 있고,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직접 다 개발했다. MS에서 만든 기술로 조합해서 하거나 오픈소스로 적당히 만드는 게 아니다. 다른 회사는 SW 개발이라고 해도 단순작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로우 레벨(Low Level)까지 다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이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다.

박재오 : 우리는 기술중심의 회사, 제품 중심의 회사다. SW 인프라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왔다.

조창훈 : 우리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상품을 기획해 나가는 것이다. 경영진은 원천기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기술을 가지고 잇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공업 회사 가면 60대 기술자들이 인정 받는다고 한다. 원천기술을 얼마나 소중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로지 상품화해서 잘 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기자 : 투비소프트도 시스템통합(SI)를 하지 않나. 많은 SW 기업들이 당장 먹고 살기 위해 SI 사업에 나선다.

박재오 : 계속 싸우고 있다. 적절한 수준으로 SI를 잘라내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려고 노력해 왔다. 우리는 연구인력들이 만든 회사이다 보니 버틸 수가 있었다. 지금도 매출을 올려야 하는 부서는 SI를 확장하자는 의견을 올린다. 하지만 우리는 SI 회사가 아니다.

이우철 : 우리도 SI를 하지만, 회사가 제품 위주로 가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기자 : 정부가 최근 공생발전형 SW 생태계 구축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도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SW 산업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우철 : 인터넷은 처음 미국의 정부(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에서 만들어졌다. 애플 아이폰4S에 들어간 시리의 원천기술도 미 국방성의 직속 연구기관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시스템 통합 발주만 하고 있다. 정부가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김시만 :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필요한 SW가 시장에 있으면 재개발 하지 않고 써 주겠다는 점이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봤다. 기존에는 시장에 있는 제품도 SI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해서 만들고, 정부 기관들이 무료로 사용토록 했다. 이 때문에 SW 솔루션 개발하는 업체들이 설 토대가 없었다. 대부분 SI 중심의 하루벌이에만 집중하게 됐다.

박재오 : SW 개발 평가 기준이 일당제라는 점이 큰 문제였다. 이번에 그것을 없앴다고 하니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SW 마이스터고 같은 것은 탁상행정이다. 미국에서 박사 받고도 변호사 하려고 로스쿨 들어가려고 한다는데, 이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입을 준비하지 않고 SW 개발할 수 있겠는가. 또 이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기업들이 고졸 개발자를 대졸자처럼 월급 주겠는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

기자 : 긴 시간들 내주셔서 감사하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심재석 기자
webmaster@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