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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정책지원에서 소외된 네트워크 산업

이유지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유지기자] 우리나라가 IT강국의 위상을 꾸준히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비롯해 IT생태계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과 역할 변화 요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맞춰 정부도 뒤늦게나마 소프트웨어 산업과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지난해 10월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공생발전형 SW 생태계 구축전략’이다. 그 핵심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대기업의 공공정보화 사업 참여를 전면 제한해, 중소기업 주축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해 성장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정부가 시장에 너무 깊숙히 개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올해 개정되면, 내년부터 대형 IT서비스 회사들과 관계사들은 공공 IT사업에 아예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올해부터 대기업의 공공 SI사업 참여하한제가 강화됐다. 매출 8000억원 이상의 대기업은 80억원 이하, 8000억 미만의 대기업은 40억원 이하 사업에 각각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범정부 차원에서 상용 SW 유지보수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제대로 실태분석과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행되면 적정 대가를 받지 못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SW 기업의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지보수 서비스 대가를 제대로 받게 될 경우, 기업은 R&D 재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어, 제품 품질과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지경부는 상용SW 유지보수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산·학 전문가로 구성한 TF(테스크포스)에서 패키지, 공개, 보안SW 등 3개 실무작업반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같은 SW 경쟁력 강화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업계가 있다. 바로 네트워크 업체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네트워크 업체들도 대부분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혜택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네트워크 장비 산업을 위한 정책은 아니다.

네트워크 장비 산업 역시 우리나라 IT 산업의 경쟁력을 창출하는데 큰 역할을 해야 할 중요한 생태계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논의에서는 언제나 한참 밀려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네트워크 장비는 ‘하드웨어’이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네트워크 산업에 있는 당사자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네트워크 장비도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기술이고, 회사의 연구개발 인력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지만, 하드웨어 무게와 부품 값 따져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제값을 쳐주지 않고 있다. 유지보수 대가의 비중도 소프트웨어 제품이 10% 정도라면 네트워크 장비는 1%도 안되는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국내 대표 중견 네트워크 업체인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의 이야기다.

국내에서 통신사업자에 납품되는 네트워크 장비 유지보수는 1% 미만으로 계약하는 사례가 허다하고, 이보다 높은 2~5% 수준으로 계약하더라도 외산 장비에 책정하는 비율에 비해서는 턱없이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물론 유지보수 계약은 2년 간 무상 보증기간이 지난 후에야 체결된다.

정부·공공기관 조차 특정 외산장비 선호로 국산 장비를 차별하는 사례는 공공기관에서 조차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저가입찰 관행은 업계의 과당경쟁을 부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으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를 ‘IT강국’ 이미지로 만드는데 뒷받침 역할을 했던 네트워크 장비 산업은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모바일 네트워크 코어 장비를 납품하는 삼성전자, LG-에릭슨 등 일부업체를 제외하고는 이미 몇몇 중소기업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시스코,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 알카텔-루슨트, 에릭슨, 주니퍼네트웍스 등 유수의 미국과 유럽의 장비업체들에 치여 발디딜 땅을 상당부분 잃었다.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지만 저가공세 등 규모로 밀어붙이는 화웨이, ZTE와 같은 중국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시밭길을 걸으며 어렵게 개척하고 있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고 기존 사업 분야로 새로운 매출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장과 기회가 안보이니 점점 많은 업체들이 전혀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모바일과 스마트,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 가속화되고, M2M(사물지능통신)이 활성화되는 등 신기술이 등장하고 발전하더라도 결국 그 근간에는 네트워크가 있다. 모든 사물과 기기가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에서 우리 네트워크 장비 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업 입찰·선정 과정에서 국산장비 역차별 문제 등을 해소하고 국내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2년 전에 지식경제부가 네트워크 산업 발전전략과 산하기관에 적용되는 IT네트워크 장비 구축, 운영지침을 고시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보인다. 그 이후로 후속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최근 KISDI(정보통신정책연구원)가 발간한 ‘인터넷 생태계 진화에 따른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정보통신 분야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네트워크 산업 내 상성협력 체계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제도적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국가들도 표준·인증, 구매프로세스 등과 같은 비관세 무역장벽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까지 들면서, 국내 산업 보호 정책 대응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초고속 인터넷, CDMA, 와이브로(WiBro)에 이어 LTE(롱텀에볼루션) 4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까지, 늘 앞선 통신 인프라 환경을 갖춰온 우리나라에서 네트워크 장비 산업의 경쟁력은 오히려 크게 약화·축소되고 있다. 심각한 역설이다.

이같은 상황이 우리가 지향하는 IT강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심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유지 기자> yj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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