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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만능에 빠진 우리 정부…북미-유럽의 게임 심의에서 배워야할 교훈

이대호 기자

[IT전문 미디어 블로그=딜라이트닷넷]

북미와 유럽의 게임물 등급심의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2일 ‘2012 게임시장 미래전략포럼’이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렸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공동 주관한 행사입니다.

이 행사를 통해, 오는 7월 시행될 국내의 게임물 민간심의에 앞서 게임선진 시장에서 민간심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북미와 유럽은 게임사업자가 민간기관을 통해 게임물 등급을 매깁니다. 이 기관이 미국게임등급위원회(ESRB)와 유럽게임등급분류협회(PEGI)입니다.

그런데 이날 ESRB의 패트리샤 반스 의장은 강연 중에 '부모의 역할'을 언급하더군요.

ESRB 게임등급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높고 부모들은 이 등급을 보고 자녀의 게임이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반스 의장은 3세에서 17세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게임을 경험했던 세대들로 ESRB의 등급을 신뢰한다고 전했습니다.

반스 의장의 설명에 따르면, ESRB는 소비자가 게임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합니다. 객관화된 심의양식이 ESRB의 강점인데요, 폭력성도 9단계로 나눠 심의를 거치고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ESRB가 제공하는 폭력성의 단계를 보면 어떤 폭력이 게임에 포함돼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겠죠.

또한 ESRB는 엄격한 자율규약의 준수를 강조했습니다. 이 시스템을 위반하면 ESRB가 사업자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합니다. 사업자에게 100만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ESRB는 등급취소의 권리까지 가집니다.

한편 PEGI의 게임등급은 유럽 30개국에서 통용됩니다. 해당 국가에서 PEGI의 등급을 법률에 적용한 영국과 이스라엘 같은 사례도 있네요. PEGI의 등급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덕분이겠죠.…



PEGI도 제작사에게 세분화된 심의절차를 제공합니다. 게임물 심의절차 중 16항26번 질의에는 사람과 유사한 등장인물에 대한 사실적 폭력 묘사가 있는지 보는데요. 7항43번 절의에서는 공상의 등장인물에 대한 비사실적 폭력이 있는지 봅니다.

가령 좀비가 폭력을 당했을 때 보통 사람과 같은 피해반응을 보이면 사실적 폭력이지만 이용자가 좀비에게 피해를 줬다고 인지하지만 실제 상해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라면 비사실적 폭력에 해당하는 것이죠.

이처럼 PEGI도 게임등급을 세분화·객관화하고 해당 내용을 공개하다보니 등급 자체에 대한 일반의 신뢰도는 높습니다.

 

물론 자율등급기관을 대외에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병행된 결과겠죠. 언어권이 다양해 PEGI의 경우 플래시 만화로도 게임등급의 내용을 홍보하더군요.

오는 7월 국내에 게임물 민간심의가 시작됩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는 민간과 정부가 게임심의에 같이 발을 담그게 되는데요. 앞서 언급된 해외 심의와는 다르게 운영되겠죠. 단계적으로 게임물 심의의 민간 위탁을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행사에 참석한 황승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사업자 자율규제에 관한 전통이 약하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업자 전통이 있다. 이게 약하면 정부가 민간을 계속 흔들게 된다. 자본주의 역사가 30여년으로 짧은 국내는 이러한 사업자 전통이 약하다”고 말했습니다.

황 교수는 정부의 규제 과잉과 함께 지나친 간섭도 우려했습니다. 자율규제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표준절차 협약으로 정부의 직권 등급분류에 제한도 필요하다고 내다봤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민간심의 정착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되는데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민간심의의 객관성·공정성 확보입니다. 대외에 정보를 공개하고 민간기구의 공정성을 확인시킬 장치가 필요하겠죠. 해외 사례의 참조와 국내에 특화된 정책 마련이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게임업계의 바쁜 행보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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