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삼성전자는 전 세계 각국에 132개의 생산·판매·물류 법인을 두고 있다.
이들 해외 법인은 서로 물건을 사고판다. 예컨대 삼성전자 영국 판매 법인이 현지 시장에 휴대폰을 판매하려면 인도나 베트남 생산 법인에서 물건을 사와야 한다.
이런 내부 거래가 이뤄질 경우 물건을 사가는 판매 법인의 통화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그간 삼성전자의 규정이었다. 영국 법인에 휴대폰을 공급한 베트남 생산 법인은 현지 통화인 동화가 아니라 영국 파운드화로 결제 대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프랑스 법인에 휴대폰을 공급했다면 베트남 법인은 유로화로 결제 대금을 받는다.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으로 이렇게 이뤄진 삼성전자의 전체 내부거래(생산↔판매, 생산↔물류, 생산↔생산, 판매↔물류, 판매↔판매 등)액 규모는 1700억달러(약 198조원)를 웃돌았다.
문제는 각각의 해외 법인이 다양한 통화를 관리하다보니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해외 법인의 환율 리스크 노출 금액이 연간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올해는 유럽 재정적자 위기 등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당시 삼성전자 대표, 부회장)은 올해 초 이런 보고를 받고선 “안정을 최우선으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15일 삼성전자는 해외 법인의 환율 리스크 관리 부담을 한국 본사가 모두 떠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로운 내부 거래 규정을 지난 4월 1일 마련, 일부 적용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내부 거래 규정에 따르면 모든 해외 법인간 거래에는 한국 본사가 개입한다. 영국 법인이 베트남 생산 법인에서 휴대폰을 사올 때, 물건은 여전히 직접 받지만 결제는 한국 본사를 통하게 됐다. 한국 본사는 영국 법인으로부터 파운드화로 결제 대금을 받고, 베트남 생산 법인에는 현지화인 동화로 돈을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해외 법인들이 다양한 통화를 보유함으로써 생기는 환율 리스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규정 변경으로 인해 본사가 다뤄야 하는 통화의 종류는 기존 18개에서 30개로 늘어나게 됐다. 연간 3000억원 규모의 환율 리스크도 한국 본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핵심은 해외 법인들이 생산, 판매, 물류 등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한국 본사가 모든 위험을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7월 1일부터는 해외 판매 법인이 한국 본사로 대금을 결제하며 변경된 거래 규정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외도 있다. 달러로 거래되는 반도체는 기존 규정을 그대로 고수한다. 거래액 규모가 상당히 큰 중국 지역 내 생산 법인의 거래에 대해서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달러 거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제 금융시장 위기로 환율 변동성이 커졌고 이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 거래 규정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 법인보단 본사에 재무 전문가들이 많은 만큼 환차손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