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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규제기관 위상…방통위 스스로 만든 셈

채수웅 기자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규제기관으로서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사업자간 분쟁마다 조정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어렵사리 내린 판단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방송시장에서 사업자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계철) 위상이 갈수록 추락 중이다. 사업자간 분쟁은 매출, 시장점유율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유리한 판단이 나올 경우 다른 한 쪽은 강하게 반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번 사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법적대응도 불사하고 있다. 방통위가 제대로 중재를 하지 못했거나 법적판단에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9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접시안테나 없는 위성방송 DCS(Dish Convergence Solution) 위법성 논란과 관련해 케이블TV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전파법, 방송법, IPTV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 방통위 판단이다. DCS는 KT스카이라이프의 위성방송 신호를 KT 국사가 받아 가정까지 IP망으로 전송하는 서비스다. 케이블TV 업계 및 KT를 제외한 IPTV 업계는 DCS를 사실상 IPTV로 규정, KT측이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KT스카이라이프는 현행법상 저촉되는 부분이 없는데다 시청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방통위가 판단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위법판단을 내리자 KT스카이라이프는 법적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30일 문재철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방통위를 강하게 성토했다.

기자회견장에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도 내걸었다. 이 문구는 유신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부정권에 항거하며 외쳤던 소리다. 방통위의 판단을 군부독재 시절의 행위와 유사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한마디로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특정업계에 편향적인 정책이라는 것이 KT스카이라이프 입장이다.

KT스카이라이프의 후속조치는 당연했다. 신규가입자 모집 정지 및 기존 가입자 해지 등의 조치에는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유감이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라는 답변을 기대한 방통위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다. 규제기관 심기를 건드려봐야 좋을 것 하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간 방통위 행보를 볼 때 반발하는 사업자의 입장도 납득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방송시장의 최대 이슈였던 지상파 재송신 문제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났었다. 방통위의 엄중경고에도 불구, 케이블TV 사업자들은 방송중단이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반발하는 사업자들의 입장은 분명했다. 방통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재송신 문제의 경우 충분히 사전에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 지상파 방송사 눈치를 보다 방통위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송신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DCS 논란도 비슷하다. 올해 KT스카이라이프가 시범서비스를 진행하면서 논란의 불씨가 당겨졌음에도 불구 방통위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과마다 나누어져있는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할지도 몰랐고 서로 다른 과에 책임을 넘기기 급급했다.

정통부를 해체하고 방통위를 출범했던 이유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에 걸맞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방통위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서비스,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방통위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융합상품 및 기술에 대한 법규정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DCS 사태가 명확히 반증하고 있다. 출범 5년째지만 여전히 예전의 방송법으로 방송시장을 규제, 감독하고 있다. 특별법으로 관리해온 IPTV는 방송분야에 집어넣을때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 방송법과 통합이 아닌 자체 법개정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상파 재송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홍성규 부위원장은 케이블TV측에 방송중단을 2시간만 미뤄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한 바 있다.

당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2시간만 기다려달라는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양반들(케이블TV SO)이 과연 공공재를 다루는, 보편적 시청권과 연관된 사업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업자인지 깊은 회의가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DCS 논란과 관련해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기자에게 "방통위가 판단을 내릴때까지 서비스를 미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분쟁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을 사업자에 넘긴 셈이다.

하지만 문재철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은 뒤늦은 방통위의 전담반 구성과 관련해 "방통위가 추진한다고 해서 제대로, 빨리 된 것이 있었느냐"며 "법개정 취지는 맞지만 과거 선례를 볼 때 빠른 시일내에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통위의 과거를 비춰 미래를 조망한 것이다.

방통위는 대선을 계기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전담반이 운영되더라도 올해 안에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는 것이다.

방송시장의 일련의 사태로 방통위는 규제기관으로서 위상을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현재의 위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남을 탓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채수웅 기자>woong@daily.co.kr

채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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