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일본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업체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이하 르네사스)가 국유화 절차에 들어갔다. 14일 일본 정부 산하기관인 산업혁신기구는 2000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엘피다가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된 이후 일본 반도체 업계는 계속해서 위기를 맞고 있는 모양새다.
르네사스는 전 세계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프리스케일, 독일 인피니언, 프랑스‧이탈리아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함께 시장을 양분해왔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까다로운 기술개발로 인해 보안이 철저하다. 혹시 모를 기술 유출에 대비하기 위해 상당히 보수적인 비즈니스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프리스케일은 자국 전장업체인 델파이와 GM, 포드 등 완성차 업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피니언도 콘티넨탈, 보쉬를 포함해 BMW, 벤츠, 아우디에 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르네사스의 경우 세계 2위 전장업체인 덴소가 주거래 고객이며 도요타, 혼다, 닛산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모두 자국 전장 및 완성차 업체들이다.
물론 모든 자동차용 반도체와 전장부품을 자국에서 공급 받을 수는 없다. 따라서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열하다. 실제로 작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인해 미국 자동차 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공장은 멈췄고 자동차 주문이 밀렸다. 히타치오토모티브시스템즈에서 생산하는 90달러짜리 ‘공기량 감지센서’ 부품 때문이었다.
르네사스가 해외로 넘어가면 일본 전장업체와 완성차 업계는 상당수의 핵심 부품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르네사스 국유화 결정 과정에서 산업혁신기구 외에 도요타, 혼다, 닛산, 덴소 등이 구제금융단에 포함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르네사스를 인수하기 전에 재빨리 구조의 손길을 건넨 셈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대지진 당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영향이 미국보다 덜했던 점은 수입처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좋아할 일은 아니다.
삼성전자, 현대오트론 등 대기업이 앞장서 자동차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기술 격차가 너무 크다. 업계에서는 선진그룹과 적어도 20년 가까이 기술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르네사스 국유화는 당장 국내 자동차용 반도체 업계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본산 자동차용 반도체와 전장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소재 부품 분야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이 전년동기대비(1~9월) 6.1% 줄어든 상태다. 2011년 2분기 이후 6분기 연속으로 감소한 수치다.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에 쓰이는 자동차용 반도체부터 제대로 국산화하고 완성차에 적용시키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