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취재수첩] 냉장고를 둘러싼 동상이몽

이수환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난 11일 LG전자가 서울남부지법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작년 8월 22일 삼성전자 ‘냉장고 용량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광고를 삼성전자 공식 혼수가전 블로그 ‘신부이야기’ 및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게시해 유무형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두 회사의 다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양사의 냉장고 출시 시점과 배경이다. 삼성전자 900리터 냉장고 ‘지펠 T9000’은 이미 작년 상반기에 개발을 마치고 7월 4일 기자간담회를 열기 전부터 유통과 판매를 시작했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후 10일간 판매량이 기존 양문형 냉장고의 3배 이상에 달했다.

그러자 LG전자 제품을 유통하는 ‘베스트샵’ 대리점은 경쟁력 있는 모델을 강력히 요구했다. 일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LG전자의 신제품 늑장대응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결국 에어컨과 같은 계절가전이 아닌 제품으로는 이례적으로 7월 16일 예약판매를 실시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이 출시된 날짜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른 8월 25일부터였다. 이 사이에 지펠 T9000은 월 1만대 이상 판매되는 등 프리미엄급 냉장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후 두 회사는 꾸준한 판매고를 올렸지만 프리미엄급 냉장고 판매 자체가 늦은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좋은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말이 업계에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동영상 바이럴 마케팅까지 더해지니 LG전자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11월 법원에서 삼성전자가 올린 동영상에 대해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이 나왔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법원에서 진행된 양사의 심리 과정도 무척 흥미롭다. LG전자는 9월 25일 공인 규격인증기관인 ‘인터텍’을 통해 삼성전자가 진행한 냉장고 용량 비교는 잘못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인터텍은 김주용 한국대표 명의로 LG전자에 공문을 보내 ‘삼성전자가 당사에 의뢰한 실험은 내 KS규격에 준해 수행되지 않았음을 밝힌다’며 ‘당사명이 포함된 시험결과 유출에 대한 고객사(삼성전자)의 리포트 오용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에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미있는 점은 LG전자가 인터텍에서 보낸 내용을 포함해 법원 심리를 진행했지만 삼성전자는 인터텍이 실시한 또 다른 비교 실험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지에는 KS 규격으로 실험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에 올라간 동영상에는 ‘물 붓기’, ‘캔 넣기’ 등의 방법이 소개됐지만 실제로는 KS규격으로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양사 관계자의 입장도 완전히 다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법원에 제출한 인터텍 자료에 따르면 지펠 냉장고가 LG전자 제품보다 오차 범위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LG존자 냉장고는 4~5%의 오차 범위를 나타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LG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냉장고 테스트 결과를 함께 비교했지만 오차 범위 내에서 800리터급과 900리터급 냉장고 용량 모두 LG전자 제품이 더 높게 나왔다”고 전했다. 같은 제3의 공인기관에서 양사가 냉장고 용량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결과를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냉장고 소송은 신제품이 다소 늦었던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실 삼성전자는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모두 챙겼다고 봐야 한다. LG전자의 경우 좋던 싫던 서로의 다툼으로 프리미엄급 냉장고 시장에 연착륙했다.

실제로 작년 900리터급 이상 냉장고는 7월 이후에 출시됐고 300만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전체 냉장고 시장의 5%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는 이 비중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어찌 보면 두 회사는 이런 부분을 노리고 있는지 모른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담합도 마다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시장 순환이 느린 가전제품의 새로운 모멘텀을 소송이라는 잘 짜인 각본 위에서 벌일 수도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결국 기업이 아닌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그저 법원이 LG전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거나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진실이 밝혀져야 하는 그럴싸한 연극무대가 아니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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