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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수렁에 빠진 국민은행, 은행-이사회 대립 해결 기미 안보여

이상일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빠져든 형국이다”

KB국민은행의 주전산기 전환 사업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국민은행과 사외이사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지난 23일 개최한 임시이사회에서 한국IBM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로 의결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3일과 30일 두 차례 임시 이사회를 열고 주전산기 전환 사업 관련 감사보고서 채택문제와 메인프레임을 포함한 재 사업 발주 안건 산정 등을 논의했으나 경영진과 사외이사들 간 의견차만 확인하고 유야무야 된 바 있다.

이번 임시이사회에서도 사외이사들은 갈등 봉합은커녕 IBM에 대한 공정위 제소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국민은행과 대립각을 이어나가는 모양새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가 끝나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IBM과 IBM의 시장행태를 공정거래법의 위반으로 보고 이를 당국에 신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IBM 가격정책에 문제 제기=이사회가 한국IBM과 IBM을 공정위에 제소한 이유는 이들의 가격정책이 독점이윤의 추구를 위해 사회적 후생(최대 생산과 최대 고용)을 가로막는 시장폐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 때문이다.

한국IBM과의 메인프레임 주전산기 사용 계약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에도 은행이 시스템 사용을 연장할 경우 매달 약 90억원의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한 계약 내용이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이 날 ‘주전산기 선정 관련 경영판단에 대한 사외이사 입장’을 발표하면서 주전산기 전환을 둘러싼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해명에 나서 주목된다.

그동안 사외이사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는데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지만 이번 발표를 계기로 주전산기 전환 사업에 대한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시일이 걸리더라도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전환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사외이사들은 “차기 주전산시스템이 장기적 관점에서 오직 은행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반드시 제대로 선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 내부의 실무전문가들과 함께 외부의 IT전문가 조력을 받아 기종 선정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적 관점에서 은행의 이익을 고려하겠다는 것은 한국IBM에 연장 사용료를 지불하더라도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또 은행의 주요한 IT사업 발주에 있어 외부 IT전문가의 조력까지 받겠다며 사실상 사업의사결정 과정을 개방한 것은 사업 추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이다.

한편 사외이사들이 연장 사용료에 대한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 한국IBM을 공정위에 제소한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은 한국IBM과 맺은 OIO계약이 내년 7월에 마무리된다. 이전에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매달 시스템 사용 연장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에 한국IBM과 IBM을 제소해 긍정적인 결론을 얻게 되면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공정위가 국민은행 사외이사측의 손을 들 경우 IBM이 기존의 가격정책을 고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정위 제소 실효성은?=그러나 일각에선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의 공정위 제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단 사외이사들의 ‘(IBM의)가격정책이 독점이윤의 추구를 위해 사회적 후생(최대 생산과 최대 고용)을 가로막는 시장폐해를 낳고 있다’는 주장을 공정위가 받아들일지 관건이다.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공정위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까지 장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상 제소건에 대해 이것이 공정위의 심사 대상인지를 판별하는데 보름에서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의 제소를 이유 있다고 판단하기 까지 한 달 가량이 걸린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의 제소를 받아들여 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은 더 소요된다. 통상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의 경우 공정위의 판단이 내려지기 까지 1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은행 사외이사들로선 공정위가 제소를 받아들여 내년 7월 이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물론 공정위가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을 때 얘기다. 하지만 IBM이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럴 경우 최종 결정이 내려질 때 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2년을 훌쩍 넘길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공정위 제소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대해 업계에선 이번 주 예정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의원회에서 국민은행 임원진들에 사전에 통보된 중징계 결정이 확정되는 것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라는 관측이다.

사외이사들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문제 삼아 금융당국이 징계조치를 내릴 경우 자신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사전에 분명히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

◆주전산기 전환 가능 여부는 불투명=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23일 임시 이사회를 통해 IBM을 공정위에 제소하기로 했지만 국민은행과의 의견교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은행과 이사회는 그동안 주전산기 전환 사업에 있어 대립각을 세워왔으며 3차례에 걸친 이사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임시 이사회에서 IBM을 공정위에 제소하기로 하면서 이사회는 메인프레임을 주전산시스템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반면 국민은행 측은 지난달 30일 이사회에서 메인프레임과 유닉스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 재 발주 안건을 의사회에 상정 시키려 했다.

결국 의사회의 안건 상정 거부로 실패로 돌아갔지만 국민은행은 현 메인프레임 시스템도 새로운 주전산기 전환 사업 검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봉합할 수 있는 양측의 의지는 점차 희석되고 있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국민은행에 대한 재제안을 확정짓는 이번주가 갈등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민은행이 전자금융거래에 있어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주전산시스템 교체 사업에서 주도권을 잃고 금감원과 공정위 등 외부의 손을 빌리려 하는 모습들은 향후 IT사업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선례로 남을 전망이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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