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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IT혁신은 재개될 수 있을까… 금융 IT전문가들의 전망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2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국민은행 전산사태를 바라보는 국내 금융권의 시선은 냉랭하다. 전산 문제로 금융회사 내부 최고 경영진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금감원은 오는 17일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한 뒤 24일 제재심의에서 KB금융 최고경영진으로부터 최종 소명을 듣고 양형을 결정할 계획이어서 이달말이면 국민은행 전산사태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되는 수순을 밟게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일단 KB금융 임영록 회장,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 등 징계대상에 오른 해당 임원들에 대한 중징계 여부과 관건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국민은행 전산교체 작업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여부가 여전히 관련 IT업계로서는 관심이다.

지금까지 언론에선 한국IBMKB금융이 놀아났다는 비아냥부터 ‘KB금융 내부 파벌의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까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번 사태와 관련해 KB금융 내부의 반응을 듣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면 국민은행 전산사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어떨까.

전직 은행 CIO, 금융회사 IT기획 담당자 등 국내 금융 IT 전문가들은 몇가지 사안에 있어서 일반의 시각과는 다소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특히 이번 사태로 ‘비용문제때문에 리호스팅 방식을 통한 국민은행 메인프레임 교체 시도가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로 보는 시각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며 프로젝트는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민은행 전산 프로젝트 진행될 것예상? =다시 프로젝트를 재개한다고해도 내년 7월말까지 오픈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은행으로서는 사실상 기존 IBM 메인프레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다수 견해다.

OIO 계약 만료 이후의 사용료가 90억원대로 뛰기 때문에 국민은행이 이 부담을 떠안으면서 프로젝트에 나설 이유가 없기때문이라는 것. 어떤식으로든 이번 사태의 최종 승리자는 IBM이라는 논리도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금융 IT전문가 집단 일각에선 이러한 논리를 전적으로 수긍하지는 않는다. 은행 IT기획 담당자는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비록 내년(7월) OIO계약 만료이후 국민은행이 메인프레임 유지비용이 한시적으로 매달 몇십억원씩은 늘어나는게 부담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국민은행이 지난 2년간 세웠던 시스템 교체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를들면 국민은행이 기존 메인프레임 체제를 유지시킬 경우, 특정 벤더에 대한 IT인프라의 종속성의 문제는 그대로 남게되며, 또 유닉스 전환시 향후 5~10년간의 IT운영비용을 비교했을 때 종합적인 ROI(투자대비효과) 분석을 통한 비교우위가 검증된다면 몇 개월간의 추가비용을 지급하더라도 충분히 교체의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시스템 전환으로 인해 거둘 수 있는 효과를 비즈니스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OIO계약 만료에 따른 추가 비용은 큰 액수가 아니라는 것.

다만 단순히 주전산시스템의 교체 문제가 아니라 기존 차세대시스템의 노후화 관점, 즉 국민은행이 2기 차세대시스템을 준비하는 관점에서 사안을 넓혀볼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이런측면에서 현재 포스트 차세대프로젝트를 통해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하고 있는 IBK기업은행의 사례는 다시 음미해볼만하다. 기업은행은 국내 은행권에서는 비교적 선도적으로 지난 2004년 메인프레임 기반의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했지만 몇 년후 다시 새로운 차세대시스템을 고민하게 된다.

2008년 외부에 의뢰한 IT경쟁력 진단 결과, 기업은행은 IT아키텍처, IT개발및 운영환경, 시장환경변화환경 대응, 사용자 편의성 등 핵심 항목에서 경쟁 은행들에 비해 확연하게 앞섰지만 2년뒤인 2010년 타 은행들이 차세대시스템을 속속 오픈하게되자 IT경쟁력은 뒤처지게됐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 시점에서 기업은행은 포스트 차세대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다.

기업은행은 포스트 차세대를 통해 '비즈니스 허브'로 규정된 일종의 미들웨어 플랫폼을 통해 기존 계정계의 부하를 대폭 줄이면서 금융거래 속도를 개선하고 채널 시스템과의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앞서 지난 2004년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할 당시 기업은행은 상품 팩토리 등의 효과로 인해 1년6개월만에 1000억원이 투입됐던 차세대시스템에 투자된 비용을 회수했다고 밝힌바 있는데, 2600억원이 투입된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에서도 같은 ROI분석을 통해 충분히 투자비용 회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IBM에 농락 당했나?…“그 보다는”= 한편 이번 논란의 불씨가 된 한국IBM 셜리 위 추이 대표의 이메일에 대해서는 정교하게 계획된 의도적인 도발이라기 보다는 국내 최대 메인프레임 고객을 상실할 위기에 놓인 IBM의 조급함이 만들어낸 우발적인 헤프닝으로 보는 견해가 다소 많았다.

시중은행 IT본부 기획팀장 출신의 한 인사는 메일 한통으로 KB금융 회장과 국민은행 행장 등 최고 경영진간의 갈등이 촉발되고, 금융 당국의 특별감사까지 받게될 줄은 아마 한국IBM도 미처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B금융이 일개 IT업체(IBM)에 농락당했다는 시각은 좀 아닌 것 같고, 금융 IT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전산 문제때문에 KB 최고경영진 내부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면화된 것이 사실 더 놀랍고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다른 은행들도 차세대시스템과 같은 대형 IT사업을 놓고 내부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이를 절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노력했었다는 것. 어쩌면 이러한 불문율이 깨졌다는 것이 금융 IT인의 입장에서는 충격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국민은행 IT조직의 거버넌스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었다. 국민은행 전산사태는 속성상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국내 지주회사형 대형 금융그룹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전직 은행 CIO출신의 한 인사는 리호스팅이 됐든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차세대시스템이 됐든 향후 국민은행이 IT 혁신 작업에 성공하려면 CIO를 중심으로 IT조직이 똘똘 뭉칠 수 있도록 확실한 리더십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이번 논란의 여파로 힘겨워하는 국민은행 IT부서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최고경영자들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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