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플랫폼 없는 금융사의 비애… 종속-독립 놓고 고민

이상일

IT융합이 금융권에 휘몰아치고 있다. 은행 고유 영역이었던 송금 서비스가 인터넷 업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인터넷 업체들은 막강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결제 업무에도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각종 금융 규제와 법규는 이같은 새로운 시장 흐름에 뒤처져 있다. <디지털데일리>는 현재 금융 IT융합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기업은행 권선주 행장은 지난 1일 창립 53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사회와 금융권은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에 와 있다”며 “IT기업의 금융업 진출 등 경제·사회·금융환경의 많은 부문에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5년의 변화가 지난 50여년의 변화보다 더 깊고 클 수 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은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촉발된 국내 금융환경의 변화는 과거 인터넷뱅킹 시대의 발전 속도를 이미 초월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스마트폰 뱅킹 등록고객수는 4034만명을 기록(2013년 기준)하며 지난 2009년 12월 관련 서비스를 개시한 이후 최초로 4000만명을 돌파했다. 인터넷뱅킹이 1999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후 등록고객수 4000만명을 돌파한 시점이 2007년 2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4000만 고객 달성에 9년이 걸린 인터넷뱅킹보다 3년이나 빠른 기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금융서비스 발전 속도에 비해 정부의 규제나 관련 법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폰 뱅킹 외에 새로운 결제서비스가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금융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업체인 ‘카카오’의 결제시장 진출을 한 달 여 앞두고 은행 및 카드사들의 이목이 모두 ‘뱅크월렛 카카오’에 쏠려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서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은행과 인터넷 업체, 그리고 향후 합류가 검토되고 있는 카드사들이 차세대 결제 시장에의 시험무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은행권에선 뱅크월렛 카카오에 대해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소액이긴 하지만 은행권의 핵심 업무인 ‘송금’ 서비스의 일부를 내주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은행 간 송금 및 결제가 자유로운 상황이다. 이 같은 서비스의 저변에는 금융결제원이라는 전문 지급결제서비스 기관을 은행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서비스의 질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 간 송금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반면 이 점 때문에 외국의 경우 IT기업의 결제서비스 사업 진출이 손쉽게 이뤄졌다는 평이다. 금융결제원의 역할을 IT기업이 떠맡으며 빠른 시간안에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뱅크월렛 카카오의 성공은 송금 서비스의 사업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서비스의 주도권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은행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카드사의 경우 은행과는 입장이 다소 차이가 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카카오가 9개 전업카드사와 손잡고 간편결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카드사의 경우 결제 수수료를 기존 PG사에 가맹점과 신용카드사 간에 중계처리 서비스 제공 명목으로 제공해 왔다.

하지만 단일 PG사보다 가입자 기반이 더 큰 카카오와의 제휴는 손해볼 게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카카오와의 제휴는 기존 PG사와의 수수료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뱅크월렛 카카오를 바라보는 업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카카오의 결제시장 진출을 한달여 앞두고 금융그룹 산하 연구소 및 증권 리서치센터의 보고서가 연이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카카오의 전자금융업 진출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전자금융 및 IT기업의 은행업 진출과 관련된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외국과 같은 정도의 파급효과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나성호 수석연구원은 ‘모바일 금융의 성장과 비금융업의 진입 활발’이란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뱅크월렛 카카오와 같은 새로운 모바일 금융서비스가 이용자의 편의를 증대시키고 재미까지 더한다면 국내 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며 “보안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금융환경의 조성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은행은 ‘ICT 업계의 금융업 진출에 따른 시장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은행권은)업계 변화에 대한 위협, 기회 인지 및 사업에 적극 반영이 필요하다”며 “기존 사업영역 방어보다 신사업 모델 지속탐색 및 비금융기관과 효율적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 모두 뱅크월렛 카카오가 가지는 경쟁력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보안 문제와 송금액의 제한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향후에도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도 ‘라인’을 통해 간편결제 서비스를 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들은 독자 플랫폼을 키울 것인지 아니면 플랫폼을 양보하고 단순한 중계자로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이상일
2401@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