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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김택진과 김정주의 동상이몽

심재석

김정주 회장(왼쪽), 김택진 대표(오른쪽)
김정주 회장(왼쪽), 김택진 대표(오른쪽)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지난 14일, 국내 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보도자료가 하나 배포됐다. 발신처는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의 최대주주인 넥슨을 향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했다.

이 자료에서 윤진원 엔씨소프트 커뮤니케이션 실장은 “지분 매입에 대해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던 만큼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공시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앞서 넥슨코리아가 엔씨소프트 지분 8만8806주(0.4%)를 추가 취득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윤 실장 명의의 이번 성명에 대해 김택진 대표가 미리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 게임업계의 두 기둥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회장의 잠재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는 같은 꿈 ‘글로벌 게임 리더’=넥슨과 엔씨소프트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6월이다. 당시 넥슨 일본법인은 엔씨소프트 최대주주였던 김택진 대표의 지분 14.7%(총 3,218,091주)를 인수했다.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의 개인적인 친분에 기반한 거래였다. 두 회사 및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당시 두 최고 경영자는 글로벌 게임 업체 인수 및 경영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도원결의 했다. 목표는 세계 최대 게임 업체 중 하나인 EA(Electronic Arts)였다.

김정주 회장은 엔씨소프트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김택진 대표에게 실탄을 지원했다. 이를 기반으로 둘이 함께 글로벌 게임 회사를 인수하고, 김택진 대표가 EA 대표로 가는 것이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많은 노력을 펼쳤지만 EA 인수에는 실패했다. EA 측은 지분을 일부 매각하되 경영권까지는 넘길 계획이 없었다. 반면 두 사람이 원한 것은 단순한 지분이 아니라 경영권이었다.

◆동상이몽의 시작=EA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 후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동상이몽이 시작됐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에 대해 단순한 최대주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로 했던 EA 공동인수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원래대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걷길 원했다. 최대주주이지만 엔씨소프트 경영에 넥슨의 어떤 간섭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엔씨소프트 이사회에는 넥슨 측 인사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넥슨은 생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로 어떠한 권리를 갖고 싶었다. 특히 뛰어난 개발력을 보유한 엔씨소프트의 DNA를 넥슨의 자산으로 공유하고 싶어했다. 실제로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인 마비노기2 프로젝트다. 지난 2013년 1월부터 양사 합작으로 마비노기2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하지만 결국 불협화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1년 만에 중단됐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양사의 문화가 물과 기름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넥슨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엔씨소프트에 8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당초 목표인 해외 기업도 인수하지 못했고,엔씨소프트의 개발 DNA를 자산화 시키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엔씨소프트 주가도 떨어져 손해가 막심했고, 넥슨이 보유한 게임들의 성과도 예전만 못해 경영 지표도 안 좋아졌다.

◆0.4% 매입은 양수겸장의 메시지=이런 상황에서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의 0.4%를 추가로 매입했다.

0.4%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넥슨은 엔씨소프트 주식의 0.4%를 추가 매입해 총 지분의 15.08%를 보유하게 됐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다른 회사 주식의 15%(상장사의 경우)를 취득하면 공정위에 신고를 하고,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한다.

넥슨도 엔씨소프트 주식의 15% 이상을 보유하게 됐으므로 공정위 심사를 받게 된다. 넥슨이 0.4%를 추가 매입해 15%를 넘긴 것은, 공정위의 기업 결합 승인을 받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이 떨어진다는 것은 언제든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인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의 4.92%만 추가로 매입하면,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계열사로 편입된다.

이는 넥슨이 엔씨소프트에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다. 여차하면 적대적 인수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엔씨소프트가 그렇게 마음대로 독자노선을 걷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속된 말로 ‘더이상 까불지 말라’는 메시지다. 실제로 인수할 수도 있다.

◆엔씨소프트, 적대적 인수 막을 수 있을까=넥슨의 지분 추가매입 공시 이후 엔씨소프트는 발칵 뒤집어졌다. 넥슨의 본심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택진 대표는 넥슨에 엔씨소프트를 넘길 생각은 처음부터 추호도 없었던 듯 보인다. 지극히 감정적인 보도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엔씨소프트가 공개적으로 최대주주를 비난한 것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업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린 것이다. 넥슨의 공시대로 단순한 투자가 아니고, 적대적 M&A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한 것이다. 여론전을 펼쳐서라도 넥슨의 인수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전만으로는 적대적 인수를 막을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지분이다. 김택진 대표가 다시 지분을 매입하고,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지분화 하는 등 방어책이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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