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지상파 방송사들은 왜 700MHz 주파수를 원할까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700MHz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한 통신, 방송 진영 간의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총 108MHz(698MHz~806MHz)폭에 대한 주인을 가려야 하는데 이 중 20MHz(718~728MHz, 773~783MHz)는 재난안전통신망 용도로 사실상 확정됐다.

원래 40MHz폭(728~748, 783~803MHz)이 옛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통신용도로 결정했지만 없었던일로 되는 분위기다. 최근 정부(미래부, 방통위)와 국회(미방위)는 재난통신망 용도로 20MHz를 우선 배정하는데 합의했다. 나머지는 사실상 미지정 상태로 보고 원점에서 용도를 결정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치열한 논의 끝네 우선 통신용으로 40MHz폭을 할당하기로 한 결정을 왜 방통위는 뒤집는 것일까. 아직 재난통신망 용도를 제외하고는 결정된 것은 없지만 정부와 미방위간 합의는 억지에 가깝다.

최근 미래부와 방통위 국감에서 많은 의원들이 "과거와는 상황이 바뀌었다"며 원점재검토를 요구했지만 사실 바뀐 것은 없다. 2011년 모바일광개토플랜 정책이 결정될 당시에도 수없이 많은 논란과 토론 등을 거쳐 여야가 추천한 방통위원들이 합의해 통신용 40MHz를 결정했다. 물론, 당시에도 통신용, 차세대방송용(UHD), 공공용(재난통신망, 철도통신망)의 수요가 있었고 방통위에 할당을 요구했다. 당시 방통위는 통신, 방송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것은 물론, 안행부, 국토부 등과도 의견을 조율했다.

또한 광개토플랜에서 통신용으로 40MHz를 할당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금처럼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108MHz 중 40MHz가 통신용도로 결정됐지만 나머지 대역을 차지할 수 있는 희망,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할당 가능성이 낮았던 공공용(재난통신망)이 우선순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가장 뒤쳐졌었는데 어느 순간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것이 과거와 상황이 바뀌었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주파수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등 다양한 가치를 고려해 할당돼야 한다. 물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다. 주파수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에서 벗어날 경우 산업, 주파수를 이용하는 기업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송 종료로 여유대역이 된 700MHz는 미국처럼 통신, 방송, 공공 등으로 쪼개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이동통신용도로 결정하는 분위기다. 현재 700MHz를 지상파 UHD 방송용으로 이용하거나 할당하겠다고 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경제적 가치가 통신이 월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데다 방송 콘텐츠 전송 및 이용이 주파수에서 IP(인터넷)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특성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주파수로 UHD방송을 해야만 하는 특수한 환경이 있는 것일까? 왜 지상파 방송사들은 세계적인 주파수 동향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움직여 자사 이익을 취하려한다”는 통신, 유료방송업계의 비판에도 불구 주파수에 집착하는 것일까.

지상파 방송사에 주파수가 필요한 이유는 무료보편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주파수로 직접수신하지 않으면 돈을 내고 봐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지상파 직접수신가구는 전체의 6~7%에 불과한 상황이다. 대부분 가구가 케이블, 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방송콘텐츠를 소비한다.

왜 사람들은 무료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지 않을까. 이유는 무료보편적 서비스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으면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었던 열악한 수신환경과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싼 유료방송 가격 때문이다.

UHD 방송시대가 열린다고 직접수신율이 갑자기 높아질 가능성은 적다. UHD 방송을 보려면 UHDTV가 필요한데 그 크고 비싼(앞으로 가격은 내려가겠지만) TV로 지상파 방송만 보려는 시청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유료방송 업계는 방송과 통신상품의 결합을 통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 유료방송을 제공한다. 과거와는 달리 지상파 이외에 다른 PP들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높다.

오히려 유료방송 업계는 지상파의 무료보편적 서비스 이면의 결과에 대해 더 우려한다. 현재 유료방송업계와 재송신료를 인상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UHD 방송시대가 열리면 가격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0%도 안되는 직접수신가구에 대해서는 무료가 될 수 있지만 90%가 넘는 유료방송 가구의 경우 부담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왜냐면 UHD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제작시설 등에 투자가 수반될 수 밖에 없고 광고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을 경우 회수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유료방송사에 대한 재송신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서비스이용료 증가로 90%에 달하는 시청가구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재송신료 인상에 대한 전망은 섣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주파수가 없으면 UHD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고 콘텐츠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 형편없는 직접수신율과 여전히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감안하면 논리의 비약이다.

그러면 왜 지상파 방송사들은 700MHz 주파수를 그렇게 간절히 희망하는 것일까.

올해 8월 국회서 열린 주파수 토론회에서 한 지상파 패널은 "주파수를 주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생존에 위협을 받게된다"고 말했다. 주파수를 주지 않으면 무료보편적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사실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파워는 여전히 가장 높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옛날처럼 절대적이지는 않다. 이제는 지상파 이외에 종합편성, CJ,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채널 등 볼만한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게다가 거실에서 TV를 보는 시청습관도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를 직접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사라질 경우 유료방송사에 대한 재송신료 협상력 저하나 채널과 관련한 불투명 증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지배력의 하락이 가장 걱정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방송 뿐 아니라 ICT 전체를 놓고봐도 플랫폼에 대한 경쟁력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방송콘텐츠 시장에 대한 트랜드는 변화하고 있다.

콘텐츠가 경쟁력이 없으면 광고도 붙지 않고 유통도 되지 않는다. 이제는 실시간 시청률이 아닌 VOD 시청률에 더 신경써야 하는 시대다.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인센티브 경매 등 콘텐츠 제작 및 투자에 대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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