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IBM, 왕의 몰락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국내 IT 사관학교’라고 불리던 한국IBM의 입지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100년 넘게 생존해 온 기업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다.
지난 1967년 국내에 진출한 한국IBM은 국내 IT인프라의 한축을 담당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최근에는 숫자만 관리하는 ‘영업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꼬박꼬박 본사로 송금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실제 지난해 한국IBM은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에 송금한 배당액은 순이익의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금은 물론이고 특허권, 기술도입사용료까지 합치면 그 금액은 4000억원 이상이다.
지난 몇 년 간 지속돼 온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로열티(충성도) 높은 직원들에게 더 이상 울타리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업무경험이 많은 엔지니어들이 퇴사하면서의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주전산기 선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었던 KB금융그룹 사태 역시 더 이상 고객들로 하여금 IBM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한국IBM과 장기 IT아웃소싱(ITO) 계약을 맺은 기업들이 계약 연장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기 ITO 고객들을 잡지 못할 경우, 한국IBM이 철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IBM의 경영진 및 임원들의 인사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한국IBM의 지사장으로 부임한 중국계 셜리 위 추이 사장은 올 4월 그동안 한국에는 없던 ‘회장’이라는 직책으로 영전하는 듯 하더니 결국 최근 퇴사하고 비자카드의 중국 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최근 또 다시 한국IBM 내부가 뒤숭숭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전에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던 한 임원이 최근 한국IBM으로 복귀했기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내부 사정이야 어떻든 수익보다 윤리성을 중시한다고 강조해온 IBM에서 이런 인사를 했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IBM 출신의 인재들은 여전히 국내 IT시장에서 맹활약 하고 있다. 친목 목적의 OB(퇴직임직원) 모임도 상당히 활발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한국IBM 출신들은 ‘친정’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부심에 한국IBM이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IBM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국내 IT업계의 든든한 맏형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지금의 모습이 향후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길 바란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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