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스플레이 업계, 10세대급 투자 놓고 고민 또 고민
* 8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중국 BOE가 10.5세대 대형 LCD 패널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한 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8세대급 생산 라인에선 60인치 이상 대형 패널을 생산할 경우 버리는 면적이 늘어나 원가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돼 있다. TV의 신규 및 교체 수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는 해상도와 크기다. 앞으로 다가올 초대형 TV 시대에도 한국 패널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가려면 대형 세대 투자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현재 패널 시황이 너무 안 좋은 탓에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대형 세대 투자에 대해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10세대 이상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김상돈 LG디스플레이 최고재무책임자(CFO, 전무)는 지난 4월 22일 열린 2015년도 1분기 실적발표 IR 현장에서 ‘10세대 LCD 공장 투자’ 질문에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루 전날인 4월 21일 중국 BOE는 400억위안(한화 약 7조원)을 투입해 허페이시에 10.5세대(3370×2940mm) LCD 생산 라인을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내년 1분기 건설을 시작해 2018년 말, 2019년 초에 가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BOE는 밝혔다.
김 전무는 “기판 크기가 크면 대화면 패널 생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투자비 증가, (기판 대면적화에 따른) 공정 시간 증가 외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잘 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무의 이 같은 발언에는 ‘BOE가 투자 발표만 해놓고 실제 집행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내포돼 있었다. 중국 업체들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는 의미다. 수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한국 산업계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까지도 ‘BOE가 정말 10.5세대 투자를 집행할 마음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현지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는 예정대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허페이 신도시 당 서기 및 관리위원회 소속 왕원송(王文松)은 “올해 12월 2일 BOE의 10.5세대 공장이 착공될 예정”이라며 “허페이 신도시에 200만평방미터 면적에 해당하는 주거공간 건설을 시작했으며, (BOE의 신규 공장이 건설되면) 더 많은 취업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BOE가 10.5세대 LCD 공장 건설을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다. 중국 정부가 ‘빵빵한’ 지원을 해줄 예정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공신부와 공동으로 ‘2014~2016 신형 디스플레이 발전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대형 세대(기판 크기)의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차별화된 우대 정책을 펼 계획이다. BOE의 10.5세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첫 투자 자금 220억위안 가운데 40억위안은 BOE가, 나머지는 중앙 정부가 댄다. 나머지 180억위안은 허페이시 지방정부가 투자기관 등을 모집해 마련할 계획이다. 즉, 10.5세대 LCD 공장을 짓기 위해 BOE가 직접 부담하는 금액은 전체 투자액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중국 정부는 정책 방향을 착실하게 따르는 BOE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못 믿겠다’던 한국 업체들은 최근 들어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10세대급 LCD 생산라인을 짓기 위한 검토 단계에 착수했다. 박동건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8월 12일 기자들과 만나 관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지난 8월 1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10세대급 OLED 생산라인의 투자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 사장은 “시장 상황을 고려해 8세대 (증착라인을)를 (보완) 투자할지, 기판 크기를 늘려 10세대 신규 투자로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10세대 급에선 OLED 쪽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LCD에 대한 투자로 갈 수도 있다.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OLED도 10세대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LG디스플레이, 9.7세대 투자 고려 중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한 자세로 10세대급 라인 건설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검토 중이다. 만약 투자를 진행한다면 생산 장비를 모두 새롭게 개발해야 한다. 공장 내부에 유리기판 생산 라인이 들어와야 한다는 점도 해결해야 될 과제다. 10세대급 대형 유리기판은 운송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패널 시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TV 완성품 업체들은 최근 신흥국 통화 약세로 이익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TV 패널 가격도 하락세를 타고 있다. 내년까지도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은 내년, 내후년에도 신규 공장을 새롭게 가동할 계획이어서 수급 상황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LG디스플레이도 기본적으로는 삼성디스플레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묘책으로 나온 것은 파주의 8세대 공장인 P9의 남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P9에 9.7세대 박막트랜지스터(TFT) 기판 라인을 설치하는 안을 놓고 투자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9.7세대는 기판 크기가 2950×2500mm로 BOE의 10.5세대보단 작지만, 기판 한 장에서 55인치 8장, 65인치 6장을 얻을 수 있다. 잘랐을 때 버리는 면적 기판 면적은 전체의 3%로 적다. 글래스 효율이 97%로 높단 의미다. 65인치만 놓고 보면 BOE의 10.5세대(효율 96%) 대비 원가를 낮출 수 있다. 8세대(2500×2200mm) 기판에선 55인치 6장을 최고의 효율로 뽑아낼 수 있으나, 60, 62, 65인치 패널은 3장이 최대다. 이럴 경우 버리는 기판 면적이 30%를 훌쩍 넘어간다. 버리는 기판 면적이 증가하면 원가 역시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화면 크기가 60인치 이상인 제품이 주력으로 올라설 경우 8세대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삼성이나 LG가 BOE의 10.5세대 투자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기판 크기를 9.7세대로 가는 이유는 파주의 P9 건물을 활용하기 위함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제품은 OLED와 LCD 모두를 고려하고 있다. 옥사이드와 비정질실리콘(a-Si) 기판을 병행 생산하면 옥사이드 기판은 OLED용으로, a-Si은 LCD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OLED와 LCD 모두 대형 제품을 낮은 원가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BOE의 10.5세대 공장이 가동되려면 아직 3년도 더 남았지만, 통상적으로 대형 디스플레이 라인을 구축하는데 2년 이상이 걸리므로 국내 업체들이 고심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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