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틱-톡톡’으로 선회한 인텔, 전후방 산업계에 큰 영향

한주엽

* 9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인사이트세미콘]

매년 틱(공정전환)과 톡(신규 아키텍처 채용)을 오가며 프로세서 성능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해왔던 인텔의 기술 진보 일정에 제동이 걸렸다. 14나노 브로드웰 칩은 당초 계획보다 양산이 6개월~1년 지연됐다. 또 출시 일 년이 채 안된 시점에 차세대 프로세서인 스카이레이크가 시장에 나왔다. 이에 따라 브로드웰은 인텔 역사상 가장 짧은 수명의 프로세서 제품군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인텔은 앞으로 틱-톡이 아닌 틱-톡톡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리적 공정 전환의 어려움 때문이다. <인사이트세미콘>은 이 같은 결정이 전후방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봤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인텔이 14나노 제조공정에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한 6세대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스카이레이크)를 공식 발표했다. 스카이레이크는 인텔의 프로세서 출시 주기로 따져보면 톡(tock)에 해당하는 제품군이다. 틱(tick)은 공정 전환을, 톡은 아키텍처의 변경을 의미한다. 인텔은 매년 틱과 톡을 오가며 공정과 아키텍처를 업그레이드해왔다. ‘틱-톡’은 시계 소리다. 기술의 진보를 뜻하는 인텔의 틱-톡 시계는 그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쉬지 않고 돌아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 같은 틱-톡 시계, 즉 인텔의 기술 업그레이드 주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5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코드명 브로드웰의 양산은 당초 계획 대비 6개월~1년 늦춰졌다. 당초 인텔은 이 제품이 2013년 말 양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브로드웰이 양산되기 시작한 건 2014년 말부터였고 본격적인 출하는 올해 초부터 이뤄졌다. 이 때문에 22나노 공정으로 생산된 4세대 코어 프로세서 하스웰은 굉장히 오랜 기간 PC 시장의 주력 중앙처리장치(CPU)로 활약할 수 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이 시기부터 인텔의 틱-톡 프로세서 출시 주기가 깨졌다고 보고 있다. 인텔은 브로드웰 양산이 늦어지자 2014년 22나노 하스웰 아키텍처를 소폭 개량한 ‘하스웰 리프래시’ 제품을 내놓는다. 틱-톡이 틱-톡톡으로 바뀐 것이다.

올 초부터 출하된 14나노 브로드웰의 수명 주기는 하스웰과 비교하면 굉장히 짧을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한 스카이레이크가 예정대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2일(현지시각) 1분기 실적발표 직후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올 하반기 스카이레이크를 출하한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다”며 “출하 계획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이 한 해 신형 프로세서 두 종을 출시했던 적은 이제껏 없었다. 이 탓에 브로드웰은 인텔 역사상 가장 수명이 짧았던 제품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현재까지 알려진 상황으로만 본다면 인텔의 틱-톡 전략은 틱-톡톡으로 바뀐다. 이는 미세공정 전환 주기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크르자니크 CEO는 지난 7월 15일(현지시각) 열린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내년 하반기 내놓을 칩은 10나노 캐논레이크가 아니라 14나노 스카이레이크의 아키텍처를 일부 개량한 카비레이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10나노 칩은 2017년 하반기에나 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 측이 이 같은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고객사들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미리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전방산업, PC 시장 침체

올해 PC 시장은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세가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PC 출하량은 작년(3억1400만대) 대비 7.3% 감소한 2억9100만대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에는 소폭이나마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PC 시장이 안 좋은 요인은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달러화 강세에 따른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 영향으로 전반적인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비단 PC 뿐만 아니라 태블릿과 TV 등 소비자가전 전 분야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PC 분야에선 일상적 교체수요가 부진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브로드웰의 짧은 수명주기가 대기수요를 늘려놨다는 분석이다. 스카이레이크를 기다리며 지갑을 닫고 있는 소비자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PC 업계엔 적잖은 부담이었다. 마케팅 활동을 위축시킨 요인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최근 인텔이 스카이레이크를 공개한 이후 주요 PC 업체들은 브로드웰 완성품 재고를 떨어내기 위해 가격 인하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프로세서를 구입해 가는 PC 완성품 업체들을 배려한다면 스카이레이크의 출시시기를 조금 늦췄어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스카이레이크가 공식 발표된 현재까지도 관련 제품을 탑재한 PC는 출시되지 않고 있다. 인텔은 올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스카이레이크를 본격적으로 출하할 예정이다. PC 업체들이 브로드웰 재고를 떨궈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 여유를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시장에 풀린 스카이레이크는 일부 데스크톱PC용 제품에 국한된다.

인텔이 틱-톡이 아닌 틱-톡톡으로 가겠다는 점을 공언한 상황이어서 앞으로는 이런 혼란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공정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폭적인 성능 향상, 전력소모량 개선은 어렵다. PC 업체들은 기술정체를 극복할 만한 디자인 혹은 기능적 요소를 보다 부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브로드웰 때와는 달리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윈도10)의 지원을 받아 마케팅 활동을 활발하게 펼칠 계획을 세워둔 것으로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스카이레이크 아키텍처는 하스웰과 마찬가지로 ‘장수’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점이다.

협력 산업, D램 가격 악영향

PC 수요 침체로 D램 가격도 좀처럼 하락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주력 PC용 D램인 DDR3 4기가비트(Gb) 1333/1666MHz 제품의 고정거래가격은 지난 9월 30일 기준 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 달(2.06달러) 대비 2.91% 떨어진 값이다. 이 제품의 가격은 작년 10월 말 3.78달러를 찍은 뒤 최근까지 계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같은 주요 D램 업체들은 3분기부터 PC D램 생산량을 줄이고 있으나 가격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만큼 수요가 좋지 않다는 얘기다.

D램 업계에선 스카이레이크가 출시돼도 수요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정거래선과 협의를 마친 주요 D램 업체들이 하반기 시황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며 “신규 CPU 출시에도 불구 PC 업체들이 공격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요가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조만간 PC용 주력 D램 가격은 2달러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스카이레이크 출시로 예상되는 D램 업계의 단기적 변화는 DDR4 D램의 본격적인 활성화다. DDR4는 DDR3 대비 평균판매단가(ASP)가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DDR4 D램의 칩(Die) 면적은 같은 용량의 DDR3 대비 7~10% 넓다. 이는 소폭이나마 D램 전체 공급량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후방 산업, EUV 도입 지연 공식화

인텔이 틱-톡에서 틱-톡톡으로 전략을 바꾼 근본적인 이유는 보다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릴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의 성능 개선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미 기존 이머전 노광 장비와 멀티 패터닝 공정 기법을 활용해 칩을 생산하고 있다. 10나노에서 패터닝 횟수가 늘어나면 공정 시간이 길어지고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합성 과정이 추가되므로 공정의 복잡성 역시 증가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원가 상승을 야기한다.

당초 인텔은 10나노부터 EUV 노광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크르자니크 CEO가 이를 공식 인정했다. 그는 미국 EE타임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EUV 노광 기술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라며 “공정 전환 주기를 늘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7나노에서도 EUV 노광 공정을 도입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설사 EUV를 도입할 수 없다 하더라도 기존 이머전 장비로 7나노까지 양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패터닝 횟수 증가에 따른 원가 상승을 어떻게 상쇄시키느냐가 해결 과제다. 그는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동일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말했다. EUV 노광 장비의 양산라인 도입 지연은 장비 업체들의 희비를 가를 전망이다. 유일한 EUV 노광 장비 업체인 ASML에게는 부정적이다. 패터닝 횟수가 증가하면 증착, 식각 과정을 추가해야 하므로 어플라이드, 램리서치 등의 장비 업체들은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크르자니크 CEO는 “7나노에서 EUV를 도입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1년은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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