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오라클과 아마존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매년 자사의 연례 컨퍼런스인 ‘오라클 오픈월드’ 기간 동안 가장 위협적인 혹은 위협이 될 만한 상대를 지목해 독설을 퍼붓는다.

2009년에 오라클이 지목한 경쟁 상대는 IBM이었다. 1년 뒤인 2010년에는 그 대상이 SAP, 세일즈포스닷컴 등으로 바뀌었다. 이후 클라우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2012년부터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서서히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올해 오픈월드에서 엘리슨 회장은 “더 이상 IBM이나 SAP는 경쟁상대가 아니며, AWS는 앞으로 심각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AWS 이외에 언급된 경쟁사는 인재관리(HCM) 분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클라우드 스타트업 ‘워크데이’ 정도였다.

클라우드 사업을 한지 10년이 되는 AWS은 IaaS 시장의 강자로, 올해 연매출 100억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 전체 매출에서 AWS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영업이익은 기존 소매사업을 훌쩍 뛰어넘으며 주요 캐시카우가 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AWS은 자체적인 DB 등을 출시하며 IaaS에서 PaaS, SaaS 등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DB와 미들웨어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라클이지만, AWS의 행보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기존 SW 대부분을 클라우드로 전환하며 PaaS와 SaaS 분야에서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IaaS 분야의 시장조사기관 보고서에서 오라클의 이름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오라클은 이번 오픈월드 기간 동안 2세대 IaaS를 출시하며 AWS를 뛰어넘겠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크-스토리지-서버-운영체제-미들웨어-애플리케이션으로 이어지는 IT구조에서 그동안 AWS은 밑단의 인프라 영역인 네트워크~서버, 오라클은 미들웨어~애플리케이션라는 윗단에서 활동해왔다. 그러다 점차 서로의 영역으로 파고들면서 경쟁관계에 직면한 셈이다.

엘리슨 회장은 “AWS에서 오라클 DB는 최적화되지 않았으며, 자체 DB인 오로라조차 AWS에 최적화되지 않았다”며 “AWS는 오라클보다 20년이나 뒤쳐진 기술을 갖고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나”며 비난을 퍼부었다. ‘폐쇄적’이라는 비판한 것은 AWS가 출시한 오로라, 레드시프트, 다이나모DB 등 DB솔루션이 자사 클라우드에서만 돌아가는 것을 비난한 것이다.

그는 1시간 남짓한 기조연설 내내 오로지 AWS과의 비교에만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자체적인 성능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며 AWS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그의 발표 이후 AWS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두 달만 있으면 반격의 시간이 주어진다. AWS 역시 매년 11월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리이벤트(Re:Invent)’라는 기술 컨퍼런스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베네시안 호텔과 미라지 호텔, 앙코르 호텔 등지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그때 AWS이 오라클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나저나 IBM, SAP 등 전통적인 경쟁사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약간은 섭섭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증오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듯이, 그들 역시 클라우드 기업으로의 전환을 적극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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