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엑사스케일’ 경쟁 벌이는 중-미-일, 전략 부재한 ‘한국 슈퍼컴’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1년에 두 번 발표되는 전세계 슈퍼컴퓨터 순위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중국이나 미국, 일본의 행보와 한국의 상황이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다. 물론 2013년부터 1위 자리를 빼앗긴 미국도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슈퍼컴퓨터는 언젠가부터 ‘국가 간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다.

지난 6월에 이어 14일(미국 현지시간)에 발표된 48차 슈퍼컴퓨터 순위에서도 중국의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굳건한 1위를 지켰다. 초당 9경3014조번의 연산이 가능한 93페타플롭스(petaflops)를 기록하며, 2위인 또 다른 중국 슈퍼컴 ‘톈허2’와도 거의 3배 가량 성능 차이가 난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은 과거와는 달리 ‘순위 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진 모양새다. 순위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실제 활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현재 중국과 미국, 일본 모두 1초당 100경회를 연산할 수 엑사플롭급(exlaflop) 성능을 내는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을 세운 상태다. 중국은 2018년경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했으며, 미국도 국가전략컴퓨팅구상(NSCI)에 따라 2023년경이면 수 엑사플롭 성능의 시스템을 내놓을 계획이다. 일본 역시 국가전략인 플래그십2020을 통해 수년 내 주도권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순위 발표에선 미국과 일본이 각각 이러한 중장기 계획 가운데서 첫 단계의 제품을 순위권에 올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단순히 ‘상징성’을 위한 보여주기식 시스템이 아니라 빅데이터 등과 맞물려 보다 광범위한 활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트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선출되면서 슈퍼컴퓨터 개발 전략에 리스크(?)가 있긴 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선 이번 순위에선 지난 6월 총 7개의 시스템이 순위에 올랐던 것에서 3개가 사라졌다. 미국과 일본의 새 시스템이 상위권에 오르면서 전체적인 시스템 성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엔 ‘한국형 슈퍼컴퓨터’ 개발을 위해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단계2020년까지는 1페타플롭, 2025년까지 30PF 이상 시스템을 만들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개발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한 산·학·연 간 컨소시엄 형태의 ‘초고성능컴퓨팅(HPC) 사업단’을 설립하고, 매년 100억원 내외의 연구 개발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최근 향후 5년 간 한국형 슈퍼컴퓨터를 개발하게 될 전담 연구단으로 성균관대 컨소시엄(서울대, 울산과학기술대, SKT, 매니코어소프트)이 선정됐지만, 경쟁을 벌였던 KISTI 컨소시엄이 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오리무중이다.

사실 정부가 미래과학기술 및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슈퍼컴퓨터’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논의를 시작한 것이 2012년초다. 이후 겨우 실행전략을 세운 것이 4년 후인 2016년이다. 올해도 1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목표로 잡은 수치 성능은 차치하더라도 대체 이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파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슈퍼컴퓨터와 같은 핵심 과학 기술은 국가안보부터 경제발전에 직결돼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락 사태로 어수선한 현 시국에서 정부가 추진한 IT정책까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단순히 수치에 집착하기보다는 진짜 국가 발전을 위해 잘 활용될 수 있는 슈퍼컴퓨터 개발 전략이 절실해 보인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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