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누가 기상청 슈퍼컴에 돌을 던지나…문제는 ‘사람’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기상청은 날씨 예보를 위해 5년에 한 번 꼴로 수백억원 규모의 슈퍼컴퓨터(이하 슈퍼컴)를 도입한다. 국가 조달 프로세스를 통해 기술과 가격 등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슈퍼컴 4호기는 2015년 도입된 미국 크레이사의 제품이다.

기상청은 지난 1999년 슈퍼컴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슈퍼컴 1호기는 일본 NEC, 2004년과 2009년에 도입한 2호기와 3호기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4호기와 마찬가지로 미국 크레이사의 제품이었다. 현재 기상청 슈퍼컴은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기상청 슈퍼컴은 항상 욕을 먹는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물품 중 가장 비싼 장비임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임무인 ‘날씨’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대한 국민의 혈세로 도입한 슈퍼컴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며 ‘슈퍼컴으로 고스톱 치냐’라는 비난까지 받는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기상청은 잇따라 틀린 예보를 내놓으면서 이 슈퍼컴은 ‘공공의 적’이 됐다. “폭염이 끝난다”는 발표 시점은 4차례나 바뀌었고 장마철 비 예보도 맞지 않았다. 누진세 논란과 맞물려 가뜩이나 ‘더위’에 민감했던 만큼,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날씨 예보에 대한 비난이 계속되자 결국 지난 8월 29일 고윤화 기상청장은 여름철 예보가 빗나간 것에 대해 사과하고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대책의 핵심은 ‘슈퍼컴’이 아닌 ‘사람’, 즉 ‘예보관의 역량 키우기’였다. 전문성을 갖춘 예보관들이 부족하다보니 자료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사실 ‘슈퍼컴’은 계산을 빨리 하기 위한 기계일 뿐, 기상예보의 오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날씨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예보 모델과 예보관의 능력이다. 수치예보모델은 일기 현상을 방정식으로 프로그래밍한 소프트웨어(SW)다. 슈퍼컴은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복잡한 계산을 하는 이 SW를 빠르게 구동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 기상청은 영국의 수치예보모델을 사용 중인데, 2019년까지 한국형 날씨 수치예보 모델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예보관 역량’과 관련해선 향후 10년 내 100여명의 유능한 예보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상청의 예보관은 50여명이지만, 2~3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순환보직 탓에 현재는 전문성 있는 예보관이 10~20명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상청은 외부 공모를 통해 민간 예보관을 채용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일정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 예보관이 될 수 있는 자격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물론 잦아지는 이상기후에 대해선 여전히 대응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찌됐든 이번 발표로 슈퍼컴은 ‘오보’와 관련해선 누명을 벗었다. 현재 기상청이 운영하는 슈퍼컴 4호기의 이름은 ‘누리(현업용)’와 ‘미리(백업용)’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명칭 공모전을 통해 지어진 예쁜 이름이다. ‘누리’는 ‘세상의 예스러운 말, 누리다’라는 뜻으로 세상의 기상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예측해 세상의 안전과 편안함을 누리도록 해준다는 의미다. ‘미리’는 ‘먼저, 앞서’의 뜻으로 현재의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의 기상상태를 미리 정확히 예측해 안전하고 편안한 미래를 밝혀준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날씨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여행은 물론이고 농사부터 각종 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좌지우지한다. 과거엔 날씨를 이용해 전쟁의 승리를 거머쥔 역사도 있다. 슈퍼컴의 성능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 날씨를 잘 맞추기 위해선 이번 기상청의 대책처럼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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