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외부 업체 의존도 줄이겠다”...힘받는 금융권의 ‘IT 자강론’

박기록
①금융권, IT자강론(自强論)을 말하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역량을 높인다’는 의미의 자강(自强). 스스로의 역량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 금융회사가 IT부문에서 외부업체의 의존도를 줄이고, 디지털뱅킹시대에 걸맞는 민첩한 '자강형 IT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면 바랄나위가 없다.

최근 지주사를 비롯해 주요 금융그룹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자체 IT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의 방향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왜 자체적으로 IT역량을 확보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몇가지로 압축된다.

'자강'은 속성상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속성을 동시에 갖는다. 자칫 잘못하면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문화로 전락할 수 있다. '자강'은 자강불식(自强不息)에서 따온 말이다. 자강을 하려면 '불식', 즉 부단히 스스로 연마하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의 상황을 중심으로 금융권의 IT자강이 가능한 방향인지, 올바른 방향인지, 그리고 이같은 현상이 궁극적으로 IT업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3회로 나눠 분석해 본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하나금융그룹 소속의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7일, 데이2(Day2)로 명명된 외환은행-하나은행 IT통합작업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통합IT 시스템 가동에 들어갔다. 좀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외환-하나은행 IT통합 프로젝트는 최근 금융권의 IT 현안에 비춰볼때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당시 통상 1년정도 걸릴것으로 보았던 통합작업이 불과 9개월의 짧은 기간에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덕분에 당초 IT통합에 배정됐던 IT예산도 200억원 정도 아꼈다. 물론 예산을 아끼기위해 일부러 공기를 단축시킨 것은 아니지만 통합 은행의 시너지를 3개월 이상 앞당긴 것은 비용절감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여기서 주목할 것은 KEB하나은행이 외부 IT업체를 선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IT통합의 전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자체 역량만으로 '중요한 IT사업' 완료 = 중요한 IT사업에 외부 IT업체를 조력자로 두지 않는 것은 국내 금융권에선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다. 외환-하나은행의 IT직원, 그리고 하나금융그룹 계열의 IT계열사인 하나아이앤에스까지 포함해 순수하게 하나금융그룹 자체의 IT역량만으로 고난도의 통합 작업을 수행했다. 이는 현재 은행권이 가진 자체 IT 역량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물론 자체 인력만으로 IT통합을 진행하는데 따른 리스크는 분명히 존재한다. 책임과 역할을 분산하는 외부 조력자 없이 기존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IT통합작업을 진행할 경우, 프로젝트 기간 동안 조직 내부의 긴장도는 최고조에 달할 수 밖에 없다.

조직의 긴장도를 풀어가는 노하우와 함께 결과물도 착오없이 내놓아야하는 치밀한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IT 통합작업을 지휘했던 KEB하나은행 CIO인 유시완 전무(현 하나금융지주 CIO 겸직)가 90여일간 사무실이 있는 ‘미생’ 빌딩(서울스퀘어)에서 숙식을 했고, IT통합 현장의 애로점을 청취하기 위해 두 은행 합쳐 500명의 IT직원들과 그것도 2회씩 모두 1000명과 식사를 한 얘기는 전설로 남았다.

유시완 전무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IT 자체 역량’의 조건으로 ‘충분한 노하우와 경험’을 꼽았다. 유 전무는 “이미 하나은행은 과거 보람은행, 서울은행 등 수많은 IT통합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통합 일정상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돌출되긴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선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 전무는 “비록 작업 기간은 9개월로 짧지만 이미 IT통합 컨설팅까지 포함하면 전체적으로 2년 정도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동안 컨설팅과 선도개발 과제를 통해 시스템의 레이아웃을 거의 다 완성해 놓았다. 외환은행 노조의 조기통합 반대 가처분 신청으로 통합 논의가 일시 중단됐을때도 외국환업무, 비대면채널 등 각 분야별로 최소한의 필수인력을 대기시켜면서 IT통합 재개에 대비했다.

◆IT통합, 차세대프로젝트 성공 노하우... 'IT 자강'의 자신감 = 이처럼 KEB하나은행이 정의하고 있는 ‘경험’의 범주는 넓다. 표준화되고 형식화된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거기에 감(感)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직관의 힘이 더해져 있다.

물론 KEB하나은행 뿐만 아니라 국민, 신한은행 등 IT통합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은행들은 이러한 경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KEB하나은행은 올해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 인천 청라 통합IT센터 이전, DB암호화 등이 올해의 IT 현안이다.

그러나 내년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을 추진하게되더라도 외부 IT업체의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그 대신 자체 IT역량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KEB하나은행뿐만 아니라 하나아이앤에스를 포함한 하나금융 IT 역량의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KEB하나은행이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SI업체를 선정하지 않고 아예 독자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이를 판단하는 것은 좀 무리로 생각된다. 기술적으로 보면, 차세대 프로젝트를 빅뱅식으로 추진할지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 후에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참고로, KEB하나은행은 올해 추진하는 100억원대 규모의 DB암호화 프로젝트도 SI(시스템통합)부분은 외부 IT서비스업체 선정없이 하나아이앤에스를 포함한 자체 IT역량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외부 IT업체 인력수급 불확실 전망도 'IT 자강' 흐름에 한몫 = 물론 대형 금융회사들이 외부 IT업체의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판단하는 데는 현재 SK C&C 사업, LG CNS 등 은행과 같은 대규모 차세대 프로젝트를 수행할 대형 IT서비스업체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들은 두 대형 IT서비스업체의 인력 풀(Pool)만을 보고,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추진 시기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을 매우 불편해하고 있다.

따라서 차세대시스템과 같은 고난도의 IT사업을 이제는 은행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인식의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독자적이란 말은 SI(시스템통합)을 의미한다.

문제는 은행들이 현실적으로 그런 역량을 갖출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견해차는 다소 있을 수 있겠으나 은행 등 국내 대형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IT 자강'을 위한 노하우와 경험,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 부분에서 은행권의 ‘IT 자강론’은 논리적인 명분을 얻고 있다.

일단 KEB하나은행처럼 과거 수차례의 IT통합 노하우, 그리고 이미 한차례씩 매머드급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던 개발 노하우가 있다는 점에선 ‘절반의 완성’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외부의 IT업체에 의한 의존도를 가급적 줄이고 금융회사가 자신의 IT조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IT 자강'노선을 결정했다고 한다면 결국 부족한 50%는 채워나가야 한다. 기존 IT개발및 운영의 노하우만으로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 없다.

금융회사가 자체적인 IT 역량, 즉 IT자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SW) 역량의 확보, 최신 프로젝트의 방법론, 현업과 IT부서간의 긴밀한 공조 등 부족한 부분을 모두 메워야한다. 엄청난 노력과 많이 시간이 걸리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과제들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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