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4차 산업혁명이 만병통치약?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주요 선진국들이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래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변화에 착실히 대비해왔다.”(최양의 미래부 장관)

“차기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벤처기업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이뤄내겠다. 4차 산업혁명의 기본 인프라 사물인터넷망 1등 국가를 만들겠다.”(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4차 산업혁명 흐름이 왔고 전북의 물적 자원 등 인프라를 활용해 앞으로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교육을 혁명적으로 바꾸겠다.” (안철수 전 국민의 당 대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고 있다. 현 정부 대통령은 물론, 관계부처 장관은 물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주요 후보들 모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 까지 창조경제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이었지만 어느새 그 자리를 4차 산업혁명이 꿰찼다.

창조경제를 만들어낸 박 대통령조차 “창조경제, 문화융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을 다져왔다”(정규재 TV 인터뷰)고 자평했다. 박 대통령은 집무정지 기간에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저서 ‘4차 산업혁명’을 읽는 등 창조경제가 아닌 4차 산업혁명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경영학자이자 사상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2011년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썼고 2015년까지 수차례 한국을 방문 3차 산업혁명을 설파하기도 했다. 미래예측도 유행을 타는 걸까. 3차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클라우드 슈밥의 4차 산업혁명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에서 탄생한 미래창조과학부도 창조경제를 버리고 발 빠르게 4차 산업혁명으로 갈아탔다. 창조경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식의 논리다. 최순실 국정농단, 박 대통령의 탄핵 추진으로 힘을 잃은 창조경제의 대체재를 제대로 찾은 모습이다. 현 정부 뿐 아니라 미래 정부도 사실상 4차 산업혁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인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면 시대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많은 신문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각종 포럼에 4차 산업혁명은 빠져서는 안되는 단어가 됐다.

그야말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한민국에는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고 있다.

‘혁명’이란 사회 경제제도나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행위다. 갑작스럽게 진행된다. 마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처럼. 정말 4번째 혁명이 눈앞에 다가온 것일까?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 18세기 영국에서 벌어진 산업혁명은 어느 순간 마차가 사라지고 상전벽해 하듯 사회가 공업화 된 것이 아니었다. 수십년 간 진행된 공업화를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토인비는 산업혁명에 대해 “격변적이고 격렬한 현상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시작해 온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혁신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몇 년만에 세대를 건너뛰는 진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3차던 4차가 됐던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이 나라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열풍이 우려되는 것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반성 없이 유행에 편승한 정치적 구호에 머무를 경우 사회와 경제는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처럼 말이다.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차기 정부에서도 그럴싸한 구호 하나는 있어야 할 것이고 아마도 4차 산업혁명은 그 자리를 꿰찰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내용이다.

세계 최고 품질의 사물인터넷이 있으면 뭐하나. 원격진료도 할 수 없고, 새로운 융복합 서비스가 등장하려면 기존 플레이어의 반대와 미비한 법제도 때문에 시장에 나오기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나라다. 클라우드, 빅데이터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보공개에는 인색하고 규제는 풀 생각이 없다. 이해관계자간 싸우면 정부는 구경만 한다.

국회서 혁신을 담당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정쟁에만 관심 있을 뿐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길 법안 통과는 외면한다. 액티브X 때문에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사지 못한다는 대통령 한 마디에 난리가 났지만 결과는 또 다른 실행파일 exe였다. 여전히 연말정산은 윈도에서만 가능하고 여러 개의 액티브X를 깔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라니. 거창하게 새로운 걸 하겠다고 하는 것 보다 차라리 기존의 나쁜 것부터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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